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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길동무 얘기

‘국민주권’ 정부의 ‘모두’의 대통령

‘국민주권’ 정부의 ‘모두’의 대통령

“언제 어디서나 국민과 소통하며 국민의 주권 의지가 일상적으로 국정에 반영되는 진정한 민주공화국을 만들겠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누구를 지지했든 크게 통합하라는 대통령의 또 다른 의미에 따라, 모든 국민을 아우르고 섬기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낭독한 취임 선서문 그대로 국민 위에 군림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자기를 지지한 일부 국민의 대통령이 아니라, 모든 국민과 소통하고 통합하고 섬기는 대통령, 분열의 정치를 끝내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다짐이다.

당연한 말인데 참으로 와닿는다. 지난 정부에서 무시되고 잊혔던 까닭이다. 민생경제도 시급하지만, 국민통합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국가적 과제가 아닌 적이 없었지만, 상황은 더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여전히 탄핵당한 전직 대통령, 민주주의를 파괴한 내란 범죄자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대하면서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무리도 있다.

정치적 분열과 감정적 반목, 혐오는 이제 일상이 되었다. 갈등이 복합적이고 다층적이라서 갈등 공화국이라 불릴 만하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는 국민 모두를 바라보는 대통령이 필요하다. 자기편만 끌어안고 챙겼던 소통령(小統領)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구치소에서 풀려날 때나 파면당해 관저를 빠져나올 때도 그랬다. 내란 재판에 출석할 때 대국민 사과나 발언 한마디쯤 기대했는데, 자신을 연호하는 지지자 좀 쳐다보겠다며 기자를 밀치는 장면을 보는 순간 그가 한때라도 대한민국 대통령이었던 자였었나 의문이 들 정도였다.

야당과 야당 대표를 정치적 협상과 대화의 상대로 여기지도 않고, 여당과 극우 유튜버의 목소리만 듣고 지내다 이렇게 된 것이다. 입에 발린 소리만 하며 감싸는 그들을 보고 있으면 정치를 잘하는 줄 착각한다. 비판하고 쓴소리하면 반국가세력으로 낙인을 찍는다. 감시자와 비판자는 국민으로 여기지 않으니, 국민주권은 사라지고 민주주의는 후퇴했다.

정치는 통합이다. 그러려면 소통이 우선이다. 다양한 경험은 관심을 기울이게 하고, 소통을 가능하게 만든다. 국가에는 정부, 정치권, 민간 사회, 시민단체, 시장 등 정치 주체와 행위가 다양하다. 갖가지 이력과 경험을 두루 갖추고 소통의 자세로 임한다면 상충하는 이해와 이익을 잘 조율해 갈등을 줄일 수 있다.

이 대통령은 시장과 도지사로 행정을 경험했고, 국회의원으로 의정활동도 해봤다. 가난도 체험하고, 지역에서 시민운동을 해봐서 사회적 취약계층을 잘 이해한다. 법조계도 경험했다. 전직 대통령이 즐겨 쓰던 ‘나도 한때’, ‘내가 검사를 해봐서 아는데’는 소통의 화법이 아니다. 내가 잘 아니까 판단해서 결정하겠으니 입 다물라는 말이다. 알량한 경험이 만든 오만과 불통은 독재로 가는 지름길이다.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고, 더 나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늘 보여준 이 대통령은 그러지 않을 것이다. 급속한 변화의 시대에 과거 경험은 그저 참고 사항일 뿐이며 구석구석 관심을 기울여서 보고 듣는 데 활용할 것이다.

소통을 내세우며 다스릴 생각을 경계해야 할 곳이 있다. 독립성이 보장되고 중립성을 지켜야 할 국가기관과 권력분립 원칙에 충실해야 할 당정 관계다. 사법부, 조직과 명칭이 변경될 검찰·경찰, 공수처, 감사원 등 권력 감시기관과는 멀어져야 한다. 민정수석을 검찰 출신으로 임명해 소통 창구로 여겨서도 안 된다. 자기 사람, 호위무사 같은 인물을 앉혀서도 안 된다. 검찰·감사원을 향해 정권수호대가 되지 말라고 공개 경고해야 한다.

야당과는 소통해야 하지만, 여당과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관계가 좋다. 당정이 한 몸이 되면 대통령은 견제받지 않는 무소불위 권력이 된다. 멀리할 것은 거리를 두면서, 소통·통합하는 모두의 대통령이 된다면 빨강과 파랑이 섞인 화합의 대한민국이 되어갈 것이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