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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사회교리

사익과 공익은 조화로울 수 없나?

사익과 공익은 조화로울 수 없나?

 

주교회의 정평위, 사회교리 주간 기념 세미나
인권주일 담화, 변두리 내몰린 사람들 기억해야

공동선을 위해 환경 등 지속 가능 고려한 투자 제안

의료의 공공성 강조

가톨릭 사회교리, 개인의 재산은 공동선에 이로운 방식으로 써야

사회교리 주간과 인권 주일을 맞아 ‘공동선 증진을 위한 사익과 공익의 조화는 가능한가?’를 주제로 세미나가 열렸다.

한국 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와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공동 주최한 이 세미나는 4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진행됐다.

발제자로 나선 이원재 씨(전 LAB2050 대표)는 재무 성과뿐 아니라 환경(Environment), 사회(Society), 지배구조(Governance)도 함께 고려해 투자하는 ESG 요소를 소개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천주교 신자들의 '국민연금 가입자 운동' 제안

수익률만이 아니라 기후변화, 환경오염, 노동, 인권, 기업의 투명성 등을 고려한 투자로 공동선에 다가가는 것이 이상적인 이야기로 들리지만, 실제로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세계적인 금융사들이 ESG 투자를 하는 추세다.

이원재 전 대표는 블랙록, 밴가드 등 자산운용사, 골드만삭스, JP모건 등 투자은행과 S&P 같은 신용평가사들이 최근 몇 년간 ESG 투자를 선언했고, 투자 규모도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도 연기금 중심으로 지속가능성과 ESG 요소를 고려하는 방향으로 기금 운용 원칙을 개정했고, ESG 경영(환경, 사회, 투명 경영)을 경영전략으로 하는 기업들도 있다.

그는 연기금, 종교 단체, 민간 재단 등이 기금 운용 때 ESG 요소를 고려하고, 재무지표 공개같이 ‘지속가능성 보고서’에 ESG 요소를 공시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GDP(국내 총생산)를 넘어서는 국가 지표가 있어야 한다며, 경제적 가치뿐 아니라 환경, 사회적 가치를 담은 삶의 질 지표, 행복 지수, 참성장지표 등의 연구와 적용을 강조했다.

이어 그는 1980년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차별 정책에 맞서 남아공 기업들에 대한 하버드, 버클리 등 미국 대학의 투자 철회 운동을 소개했다. 또 화석연료 기업 투자를 철회하라는 학생들의 시위로 2019년 캘리포니아대학이 대학 기금으로 화석연료에 투자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일도 있다. 이 전 대표는 이런 외침이 결과가 된다며, “우리가 금융에 관해 새로운 원칙을 이야기하는 것이 새로운 사회를 만든다”고 말했다.

한 청중이 당장 할 수 있는 구체적 실천을 묻자, 이 전 대표는 천주교 신자들을 대상으로 한 '국민연금 가입자 운동'을 제안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기업에 투자를 중단하라고 목소리를 내는 것은 미래세대를 위해서도 가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 행위에 돈 지불, 당연하지 않다

정형준 정책위원장(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의료 상품화, 의료 민영화 등 시장 중심 의료 공급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의료의 공공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본주의 이전 시대에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돈을 받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었다. 의료 행위에 돈을 내는 것을 정상이라고 봐선 안 된다”며, 의료인은 공적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이고, 총체적으로 인간을 바라보고 치료하도록 의료의 가치를 복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의료 민영화를 우려하며, 영리화 시도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12월 4일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사회교리 주간, 인권 주일을 맞아 세미나가 열렸다. ⓒ배선영 기자

사익과 공익의 충돌, 법적 해결이 전부 아니다

장진환 부연구위원(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은 사익과 공익이 충돌할 때 법적 해결 방법이 있지만, 어떤 제도가 위헌이 아니라고 해서 그 제도가 이상적인 제도임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라며 법적 판단의 한계를 설명했다. 그러므로 개별 사건마다 인간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 중심으로 가치 판단을 하는 것이 가톨릭 신자로서 나아갈 길이라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사형제에 대해 어떤 결정이 사랑과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지 생각해 보라고 제안했다.

박동호 신부(서울대교구)는 사회교리 내용을 바탕으로 사적 이익과 공적 이익 사이의 조화에 관해 강연했다. “간추린 사회교리”를 보면, 사적 소유권의 사회적 기능을 강조한다.

“재화의 보편 목적은 재화를 합법적으로 소유한 이들이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관한 책무를 수반한다. 개인들은 그들의 자원을 사용할 때 그 사용이 가져올 결과를 염두에 두지 않고 사용하려 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그들 자신과 그들의 가족뿐만 아니라 공동선에도 이로움을 주는 방식으로 행동해야 한다.”(178항)

박 신부는 더불어 재화를 우상시하지 말아야 하고, 재화의 사용에 있어 사회적 약자를 위한 우선적 선택을 강조했다.

김선태 주교, "우리가 보지 않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관심 기울여야"

한편, 12월 4일은 제41회 인권 주일이자 제12회 사회교리 주간(12월 4-10일)이다. 김선태 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는 담화문에서 “배척된 사람들, 엄연히 있어도 무관심으로 방치되거나 변두리에 내몰린 사람들”을 기억하자고 말했다.

“우리는 택배 물건을 받고 기뻐하면서도 택배 노동자의 과로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배달 음식으로 만찬을 즐기면서도 분초를 다퉈 오토바이를 몰아야 했던 배달 노동자의 아슬아슬한 곡예 운전은 좀처럼 안타까워하지 않습니다. 갓 구워 낸 빵의 향기를 즐기지만, 밀가루 반죽기에 끼어 죽어 간 사람은 그저 남일 뿐입니다. 밤새 내놓은 쓰레기 더미들이 말끔히 치워진 집 주위를 바라보며 상쾌함을 느끼면서도 정작 누가 치웠는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늙고 병든 가족을 헌신적으로 돌보는 요양 보호사들을 시간당 얼마쯤으로 치부하기 일쑤입니다. 축제를 즐기러 간 많은 젊은이가 소중한 목숨을 잃었는데도 이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기도 합니다.”

김 주교는 이어 국가 공권력과 정치 공동체가 배척된 사람이 생기게 된 사회적 조건을 바꾸려고 최선을 다해야 하고, 각자는 “우리가 보지 않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 관심을 두라고 당부했다.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유튜브 채널에서 세미나 전체 영상을 볼 수 있고, 주교회의 홈페이지에서 사회교리 주간 강론 자료를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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