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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서 왜 절해유?

어떻게 마음의 고통을 맞이할까

 

휴심정벗님글방

어떻게 마음의 고통을 맞이할까

사진 픽사베이

‘어떻게 마음의 고통을 맞이하는가’에 대해 법성게에 기막힌 말씀이 있습니다. 즉 ‘불수자성 수연성’(不守自性 隨緣性)이 바로 그 말입니다. 이것은 공부인이 마음의 고통을 어떻게 맞이하고 경험하는지 궁금한 분에게도 바른 길로 안내하여주는 지침이 됩니다.

 

불수자성 수연성이란 ‘힘든 경계를 맞이하여 흔들리지 않으려 애쓰고 노력해 자성을 지키는 게 아니라 인연 그대로가 곧 성품이다’란 말입니다. 이것은 눈앞에 일어나는 세상의 역경 속에서 스스로 자성을 지켜보면서 그걸 잊지 않으려 하는 것은 진짜 공부가 아니라 제 마음의 분별 작업이란 말입니다.

 

그렇다면 진짜 제대로 된 마음공부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것은 다가오는 모든 힘든 인연과 상황을 내 존재를 활짝 열고 있는 그대로 온전하게 다 맞이하여 경험하고 지나가게 하는 것입니다. 마치 거대한 나무는 온갖 세월과 풍상을 피하지 않고 오는 그대로 다 맞이하고 경험하였듯이. 그래야 내 그릇이 커지고 또 커져서 틀이 깨지고 무한해집니다.

 

아이들은 몸이 아파도 그저 아플 뿐 아무런 걱정근심 분별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른들은 이러다 잘못되면 어쩌나 미리 걱정을 만들어 그 속에 빠져버립니다. 스스로 자기가 만든 생각과 감정 속에 갇혀 노예가 되어버립니다. 깨어있는 자는 나를 포함한 세상 일체가 곧 0(공)자리가 일으킨 분별세계란 것을 항상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안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도 그 본질은 결국 다 내 생명의식이 일으킨 마음활동 현상임을 여실하게 봅니다. 그러므로 그 위에 다시 또 분별을 일으켜 오온현상을 일일이 해석 대응하고자 하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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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비가 오면 한번 시원하게 온몸으로 맞듯이 그렇게 삶을 삽니다. 이것이 바로 수연성(隨緣性)이니 곧 ‘인연 그대로가 성품이 나타난 현상’이므로 거기에 저항하거나 조작하지 않은 채 두팔 벌려 맞이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이 자기에게 다가온 십자가의 고통을 그대로 껴안듯이 말입니다.

 

바로 그런 자기를 비우고 버린 예수의 자세와 태도 때문에 그는 예수에서 그리스도로 변하고 거듭난 것이지요. 석가도 닥쳐오는 그 어떤 인연이나 상황도 도망치거나 저항하지 않은 채 의연하게 맞이했습니다. 바로 이런 자세를 통해서 우리는 에고를 벗고 신불(神佛)의 경지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 앞에 다가오는 삶의 모든 인연들에 당당하십시오. 미리 계획하고 준비는 철저히 하되 불필요한 걱정근심을 하진 마십시오. 에고는 날아오는 화살(역경계) 앞에 일어서는 행동에 대해 큰일난다며 난리법석을 칠 것입니만 그조차 내가 만들어낸 분별환상임을 보셔야 크게 깨닫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글 김연수(피올라마음학교 교장·한양특허법인 대표변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