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공현 대축일 전 화요일
(요한1서2.29-3.6.요한1.29-34)
< 하느님이 여기 우리 곁에 계십니다! >
돈보스코께서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위대한 사업이 최초로 시작된 장소는 이탈리아 토리노시 외곽 발도코라는 장소입니다. 걸어서 3분 거리에 요셉 코톨렌고 성인이 시작한 피콜라 카사(Piccola Casa)라는 대단위 종합사회복지시설이 있습니다. 가까이 있기에, 산책삼아 종종 들렀습니다.
시설 이름이 지닌 의미는 ‘작은 집’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규모가 어마어마합니다. 부랑인들, 중증 장애인들, 불치병 환자들, 정신질환자들 등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이 수용되어 따뜻한 보살핌을 받고 있습니다.
인생의 막장에 와있는 환자들이 많다 보니 여기저기 시끌벅적 요란스럽습니다. 그런데 가끔 분위기가 숙연해지며, 동시에 환자들의 얼굴도 부드러워지고 편안해질 때가 있습니다.
천정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정기적으로 세상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올 때입니다. 따뜻하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는 듣는 모든 사람들의 긴장된 마음을 편안하게 풀어줍니다.
“하느님이 여기 우리 곁에 계십니다!”
임마누엘 하느님,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우리 사이에 현존하시는 하느님! 이 대명제는 이론이나 희망 사항이 절대 아닙니다. 명확한 실제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권능과 사랑으로 우리와 함께, 우리 곁에 계십니다.
오늘 세례자 요한도 확고한 하느님 현존 의식을 지니고 있었기에 큰 목소리로 확신을 갖고 외칠 수 있었습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 양이시다.”(요한 복음 1장 29절)
만일 세례자 요한이 꾸준히 깨어 기도하고 있지 않았다면, 맨날 먹고 마시고 흥청대면서 세상 것이 잔뜩 몰입되어 있었더라면, 엉뚱한 사람을 가리키면서 메시아라고 외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은 깊은 광야 속으로 들어가 내공을 충분히 닦았기에, 몸에 밴 극단적 청빈 생활을 기반으로 한 맑은 정신을 소유하고 있었기에, 때가 차자 등장하신 메시아를 뚜렷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세례자 요한은 겸손의 덕으로 똘똘 뭉쳐져 있었습니다. 자신은 그저 뒤에 오실 주님을 위한 보잘것없는 작은 도구요 이정표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지속적 겸손의 덕은 어디에 주님이 계시는가를 살펴보는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한 일이라기에는 도저히 믿기 힘들 정도의 엄청난 사회복지사업 운동을 일으킨 요셉 코톨렌고 성인이었지만, 그 역시 지극히 겸손했습니다. 그가 살아생전 남긴 말입니다.
“저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입니다. 심지어 저는 제가 누군지도 어떻게 돼 먹은 인간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천주의 섭리 작은 집’ 사업은 분명하게 제 일입니다. 이 단체를 지원하는 일이 제 일입니다. 자, 주님 안에서 나아갑시다.”
요셉 코톨렌고 성인은 자신이 모시고 있던 가난한 이들과 도움이 필요한 이들 앞에서 그는 항상 자신을 ‘천주 섭리의 일꾼’이라고 불렀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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