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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福音 묵상

< 그들은 목자 없는 양들 같았다 >

연중 제4주간 토요일

(히브13.15-17.20-21.마르6.30-34)

< 그들은 목자 없는 양들 같았다 >

책을 읽다가 친구와 전화하는 이런 대화 내용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여보세요?”, “응, 너구나. 요즘 어떻게 지내니?”

“좋아, 넌 어때?”, “사실 엉망진창이야.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글쎄 암이라는 거야.”

“그래? 뭐 새로운 소식은 없고?”

설마 이렇게 대화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현대인에게 이런 모습을 어렵지 않게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즉, 남의 말은 전혀 듣지 않으면서 자기 말만 하는 사람입니다. 예전에 어린 학생들과 노래방에 갔던 적이 있습니다. 이 학생들은 제게 이렇게 말하면서 마이크를 넘겼습니다.

“신부님이 먼저 한 곡 불러주세요.”

노래를 선곡해서 부르는 데, 아무도 제 노래를 들어주지 않습니다. 모두 자기 노래를 선곡하느라 바빴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들어주지 않는 노래를 왜 부르고 있는가 싶어서 정지 버튼을 누르고 마이크를 넘겨주었습니다. 그 뒤 노래를 부르기보다 열심히 학생들의 노래를 들어주었고 열심히 손뼉을 쳐주었습니다.

저의 경우는 남이 노래를 들어주지 않으면 굳이 부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요즘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남이 듣든 말든 상관없이 자기만 노래 부르면 된다는 식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대화도 그랬던 것일까요? 들어주지 않는 말의 홍수 속에서 외로워하는 사람이 늘어날 뿐입니다. 따라서 스스로 생각해보십시오. 만약 내가 한 말만 기억나고, 남이 했던 말이 기억나지 않는다면 나 역시도 듣지 않는 사람입니다.

인간관계의 시작은 내가 말하는 것에서가 아니라, 남의 말을 들어주는 데서 이루어집니다. 주님께서도 우리와의 관계를 더 좋게 하시려고 직접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않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대신 우리의 말을, 어떤 말이든 상관없이 모두 들어주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곁에는 늘 많은 사람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요구사항의 말을 가지고 있었지요. 육체적인 아픔을 해결해달라는 말, 마귀를 쫓아 달라는 말, 영적 부족을 채워줄 수 있도록 해달라는 말…. 그 밖의 많은 청원의 말로 예수님과 제자들은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을 물리치지 않으십니다. 가엾은 마음, 바로 사랑하는 마음에 그들의 모든 말들을 들어주셨던 것입니다.

주님의 이 모범을 따라, 우리 역시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 말만 주저리주저리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의 말을 잘 경청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과 우리의 사랑 관계처럼, 나의 이웃과도 사랑의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

미래가 있다는 말은 영원하다는 의미로, 황금기가 올 거라는 의미도 아닙니다. 바로 오늘을 ‘사랑’하겠다는 허락, 자유, 인내를 뜻합니다(테리 허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