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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며 목 축일 샘-法頂

< 양생법(養生法) >

< 양생법(養生法) >

지난여름 한 도반의 권유로 자연식에 대한 책을 읽은 일이 있다. 날마다 먹고 지내는 식생활에 대해 그 전에도 적잖은 반성을 한 바 있었지만, 이번에는 내 자신의 식생활을 개선하기로 했다. 손수 끓여 먹으면 그 개선이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칼슘의 적이라는 흰 설탕부터 우선 추방했다. 순전한 채식 체질인 우리가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칼슘을 흰 설탕 때문에 빼앗겨서는 안 될 것 같아서이다. 그리고 백미(白米)의 재고마저 없애버렸다. 그날로 장에 나가 조, 수수, 보리 콩, 현미를 팔아왔다.

부드러운 것에 길이 든 혀는 거친 잡곡밥을 싫어하겠지만, 그릇된 식생활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결단이 필요했다. 잡곡밥은 많이 먹을 필요가 없다. 백미의 절반만 먹으면 충분하다. 그 대신 꼭꼭 씹으면서 그 맛을 음미해야 한다.

그리고 찬이 별로 먹히지 않는다. 어쩌다 밖에 나가 그 전처럼 흰밥을 먹으면 그렇게 싱거울 수가 없다. 그리고 이내 배가 고프다. 잡곡밥처럼 진기가 없는 모양이다. 그 전부터 될 수 있으면 간소한 식생활을 하고 싶었는데, 다시 자취를 하게 되니 그것이 가능하다.

아침은 부드럽게, 점심은 제대로, 저녁은 가볍게. 이것이 내 식생활의 실상이다. 평생을 두고 내게 봉사해줄 위장을 너무 혹사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먹는 일을 가지고 자랑하듯 드러내는 것은 결코 점잖은 일이 아니다.

적어도 우리네 전통적인 인습으로는, 그러나 자신의 실험을 통해서 이웃에 널리 권장할 만한 일이라면, 그 점잖지 않은 일을 드러내어도 무방할 것 같다. 잡곡밥을 먹기 전에는 끼니때가 조금만 지나도 허기가 져서 맥이 빠지곤 했는데, 이제는 어쩌다 한 끼쯤 걸러도 허기진 줄을 모르고 지나간다.

식량 자급이 안 된 우리나라는 대풍이 들었다는 금년에도 수억 불 상당의 양곡을 외국 시장에서 비싼 값에 사들여와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채무국으로 위태로운 빚더미 위에서 흔들흔들 하고 있는 우리 경제구조요 빚꾸러기 신세에, 어떻게 남들처럼 잘 먹고 잘 입고 잘 쓸 수 있겠는가.

독사와 굼벵이, 지렁이, 고양이까지 소위 건강식품(정력제)이라해서 수입해다 먹는 뻔뻔스럽고 음흉한 녀석들이 자기네만 즐기면서 오래 살겠다고 버티고 있는 세태이긴 하지만, 절대 다수의 가난한 이웃들을 생각한다면 좀 자숙할 수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동서고금의 양생법(養生法)을 보면 한결같이 검박한 식사를 권했지 기름지게 먹으라고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의 건강은 먹는 것만으로 유지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건강을 유지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마음의 안정이 우선되어야 한다.

몸이란 마음의 그림자와 같아서 아무리 값비싼 보약을 사시사철 먹는다 할지라도 마음이 안정되어 있지 않으면 그것은 오히려 독이 되고 만다. 자기 마음은 다스릴 줄 모르면서 잘 먹고 거드럭거리며 지내는 사람일수록 대개가 고혈압과 심장병, 당뇨 같은 문명병을 앓고 있지 않은가.

마음을 안정시키려면 그 마음을 어지럽히지 말아야 한다. 분수 밖의 탐욕이 우리들 마음을 산산이 흐트려놓는다. 외부로만 향했던 시선을 안으로 거두어들일 수도 있어야 한다. 밖으로 쳐다보지만 말고 안으로 들여다볼 때 자기 분수를 가늠할 수 있다.

휴정(休靜)의 <선가귀감(禪家龜鑑)>에 이런 말이 있다. '수본진심 제일정진(守本眞心 第一精進)', 즉 자기 자신의 천진스런 본래 마음을 지키는 것이 으뜸가는 정진이라고. 사람은 저마다 자기 빛깔과 특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자기 자신답게 살려면 그 빛깔과 특성을 마음껏 드러내야 한다.

그래야 사회적인 존재로서 그 조화를 이루게 된다. 그런데 대개의 사람들은 자신의 특성은 묵혀둔 채 자꾸만 남을 닮으려고 한다. 이것은 오늘의 교육제도와 사회적인 인습에도 문제가 있지만, 자신을 망각한 그 사람 자신에게 보다 큰 허물이 있을 것이다.

자기 특성을 마음껏 발휘하면서 어떤 일에 전념할 때 우리들의 마음은 온갖 근심 걱정에서 벗어나, 가장 투명하고 평온해진다. 이런 상태가 곧 마음의 안정이다.

둘째로, 우리들이 건강을 유지하려면 즐겁고 명랑한 생활을 해야 한다. 즐겁고 명랑한 생활이 곧 삶의 리듬이요, 무게다. 즐거움이 없는 곳에는 진정한 삶도 있을 수 없다. 우리들은 스스로 즐거움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 세상 자체가 즐거움만 있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울적할 때에는 노래를 한번 불러보라. 막혔던 가슴이 조금씩 열릴 것이다. 그래도 안 되면 심호흡을 몇 차례 하고 나서 방안을 쓸고 닦는 청소라도 해보라. 마음에 낀 먼지와 때가 함께 벗겨지고 그 자리에 맑은 바람이 감돌고 따뜻한 햇살이 비칠 것이다.

무엇이든지 마음의 본성에 따른 행동은 즐겁고 그에 거슬린 짓은 즐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기왕에 내 인생을 내가 살 바에야 즐겁고 명랑하게 살아야 한다. 그래야 사는 일 자체가 가치 있고 소중하다. 즐겁고 명랑한 자리가 아니면 먹는 음식도 소화되지 않는다.

끝으로, 우리들이 건강을 유지하려면 올바른 식사를 해야 한다. 올바른 식사란, 기름진 식사가 아니라 합리적인 식사를 말한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될 수 있으면 가공되지 않은 자연식을 섭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공식품을 개발하여 그걸 즐기던 서양인들이 요 근래에 와서는 그네들 자신이 자연식품을 개발, 애용하고 있지 않은가.

부드럽고 달콤한 것에 길이 든 우리들의 혀를 심신의 건강을 위해 오염되지 않은 자연으로 인도해주어야 한다. 마음의 안정이나 즐겁고 명랑한 생활에는 먹는 음식이 중요한 작용을 한다. 우리들이 그때그때 먹고 마시는 것들은 피가 되어 신경조직을 유지하기 때문에 음식은 정신작용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그러니 어떤 성질의 음식을 먹느냐 하는 문제는 어떤 마음을 가지느냐 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일반적으로 육식동물은 포악하고 거칠다. 그러나 초식동물은 선량하고 온순하다. 이상한 고집이겠지만, 나는 사람을 대할 때 그가 식물성적인 인간이냐 동물성적인 인간이냐로 가른다.

맑고 투명한 사람은 가까이하고 싶지만, 탁하고 불투명한 사람과는 가까이하고 싶지 않다. 뒤꼍에서 툭툭 굴밤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또 가을이 익어간다. 1983.

- 법정 스님의 물소리 바람소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