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牧者의 지팡이

‘가난한 이들 위한 교회’ 몸소 실천한 프란치스코 교황

  • ‘가난한 이들 위한 교회’ 몸소 실천한 프란치스코 교황

2014년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손을 잡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가난한 이들의 교황’, ‘예수님을 중심에 둔 교황’ 그리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을 실현하는 교황’.

가톨릭교회 역사상 최초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에서 이름을 딴 프란치스코 교황을 수식하는 말이다. 오는 13일이면 그가 교황으로 선출된 지도 어느새 10주년을 맞는다.

가난한 교회가 되자

프란치스코 교황은 임기 초부터 “가난한 사람을 위한 가난한 교회가 되자”고 당부했다. 동시에 스스로 모범을 보였다. 교황궁을 떠나 방문객이 머무는 ‘산타 마르타의 집’에 거처를 마련했고, 의복과 장식을 최소화했다. 그 뒤로 마치 영혼을 치유하는 의사처럼 간소하게 흰 수단만 착용해온 교황은 교회를 ‘야전병원’에 자주 빗댔다. 그러면서 “상처 입은 이들을 치유해 세상에 다시 나가도록 도와야 한다”고 꾸준히 강조해왔다.

2013년 7월 첫 사목 방문지로 난민의 무덤으로 불리는 이탈리아 최남단 람페두사 섬을 선택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였다.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120㎞가량 떨어진 람페두사 섬은 아프리카 난민들이 유럽으로 가기 위한 주요 밀항지로, 해마다 난민 수백 명이 물에 빠져 숨지는 곳이기도 하다. 교황은 이곳에서 난민에 대한 형제애를 강조하는 동시에 “경제의 세계화는 무관심의 세계화를 만들어냈다”고 비판했다.

교황은 이후에도 세계 어디를 가든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과 늘 함께했다. 교황은 2014년 방한 당시에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세월호 참사 피해자 유가족들의 손을 잡았다. 가난과 코로나19 팬데믹·기후위기·자연재해로 고통받는 제3세계 국민과 원주민을 만나 위로를 전했다. 전쟁으로 고통받는 우크라이나인과 미얀마인ㆍ팔레스타인 등을 위한 사랑과 연대를 끊임없이 호소하고 있다. 교황은 제국주의 피해를 본 원주민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기도 했다. 2022년 캐나다를 방문한 교황은 그리스도인들이 열강들의 식민화 사고방식을 지지했던 방식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

교황은 노숙인이 추위로 얼어 죽는 것이 더는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 시대를 개탄했고, 사제들에게 “가난한 이들을 먼저 찾아가라”고 거듭 촉구했다. 그러면서 “물질의 우상에 빠지지 말라”고 경고하며 가난과 나눔의 정신을 강조했다. 생일에 노숙인을 초대해 미사를 봉헌하고, 성 베드로 광장에 샤워장과 이발소를 설치했다. 교도소와 보육원ㆍ양로원을 방문해 가난과 소외, 무관심과 차별로 고통받는 이웃의 존재를 환기하기도 했다.

 

2014년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손을 잡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자비의 특별 희년 선포와 세계 가난한 이의 날 제정

2015년 자비의 특별 희년(2015년 12월 8일~2016년 11월 20일)을 선포한 것도 가톨릭 교회가 하느님 자비를 실천하며 살기를 독려하기 위해서였다. 자비의 특별 희년은 ‘세계 가난한 이의 날’ 제정으로 이어졌다. 교황은 “전 세계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가장 작은 이들과 가장 가난한 이들에 대한 그리스도 사랑의 훌륭한 징표가 되기를 바란다”며 2017년부터 연중 제33주일을 ‘세계 가난한 이의 날’로 지내도록 했다.

교황은 매년 이날이면 가난한 이들을 위해 교황청 문을 열어뒀다. 이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고 식사를 나눴다. 행사는 교황 자선소가 주관했다. 교황 자선소는 프란치스코 교황 즉위 후 교황 뜻에 따라 바티칸 거리에서 노숙인에게 무료 급식을 제공하고 있다. 이들을 위한 진료소, 약국도 운영 중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중에도 사랑은 멈추지 않았다. 교황은 코로나19 백신을 어려운 이웃 국가들과 나누고, 전쟁 지역에 긴급구호기금을 때마다 보냈다. 2018년 제주에 온 예멘 난민을 위해 교황청 자선기금 1만 유로를 제주교구에 보내기도 했다. 교황청 부속 기구였던 교황 자선소는 2022년 교황청 구조 개편에서 ‘애덕봉사부’로 승격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을 앞둔 2019년 11월 15일 교황청 내에 일주일 동안 문을 연 무료 진료소를 방문해 의료진을 격려하고 있다. OVS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 실천

저명한 예수회 신학자 알로이시우스 피어리어스 신부는 이러한 교황의 행적을 두고 ‘새로운 실천’이 아니라고 말했다. 단지 온전하게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지시를 실행한 결과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피어리어스 신부는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해 다룬 저서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에서 “교황은 복음이 요청하는 ‘복음적 가난’이 지닌 진복의 영성을 실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경제적 가난’에 빠져 있지만 온전한 인간성 회복을 위해 투쟁하는 이들과 함께하기 위해, 본인이 야전병원이라 부르는 곳에 투신했다”며 성경 구절을 인용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