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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곱씹어 깨치기

낡은 이념에서 희망을 찾는건 나무위에서 물고기 구하기

                           낡은 이념에서 희망을 찾는건 나무위에서 물고기 구하기

사진 픽사베이

골짜기 사이에 아름답게 가꾸어진 마을 하나 있었다. 그곳에 수력발전소를 세울 것이라는 계획이 발표되었다. 댐이 건설되면 이 아름다운 마을은 잠기게 될 예정이었다. 관계 당국에서는 주민들에게 안내 편지를 보냈다. "일년 반 후에 이 마을은 물에 잠기게 될 것입니다. 주민들은 그 전에 이 마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주를 해야 합니다. " 그 소식을 발표된 후부터 마을은 황폐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지저분한 부분에 페인트칠을 하지 않았다. 부서진 공공시설물도 관리를 하지 않았고 고장난 것이 있어도 그대로 방치해 두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서히 마을 떠나갔고 그 마을 안에는 떠날 수 없는 형편에 있는 사람들만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발전소 건설 계획은 자꾸만 미뤄져 갔다. 어느 날 한 신문 기자가 그 마을을 방문했다. 기자는 형편없이 변해 버린 마을 보고 한 주민에게 물었다. "왜 마을이 이렇게 형편없이 되도록 내버려두는 겁니까?" 주민은 한 숨을 쉬면서 대답했다. "미래가 없는 곳에는 현재를 살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사진 픽사베이

꿈은 열린 가능성입니다. 열린 미래가 있다는 것은 오늘을 살아갈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래가 이미 정해져 버렸다면 더 이상 오늘을 살아갈 의욕이 생기지 않습니다. 20세기에 쟁취한 평등사회가 21세기는 신분제 사회로 회귀하고 있습니다. 어떤 수저를 입에 물고 나왔느냐가 미래를 결정한다면 청년은 절망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절망의 늪에서 희망을 노래해야 합니다. 대안이 없는 비판은 물에 빠진 사람을 더 깊이 밀어넣는 짓입니다. 진보 정권이 비난을 받는 이유는 지나친 과거청산에 발목이 잡혀 미래 세대의 필요(need) 를 알아채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청년은 화약고 같아서 작은 희망의 불씨 하나로도 폭발하는 에너지가 있습니다. 그 청년에게 과거에 유행했던 이념을 주입하려는 것은 화약고에 찬물을 붓는 격입니다. 새 희망을 보고 싶거든 청년에게 미래를 맡겨야 합니다.

글 문병하 목사(양주 덕정감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