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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삶(이웃사랑)

< 짧은 메모, 긴 위안 >

< 짧은 메모, 긴 위안 >

어느날 매우 우울해 보이는 한 사람이 서점에 들어 섭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그의 얼굴도 무표정했지만 왠지 그의 무표정은 한결 더 무겁고 어두워 보였습니다.

얼마 후 그는 책 몇권을 갖고 계산대 앞에 섰습니다.

그가 내민 책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모두가 '죽음'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계산을 마치고 손님이 가져온 책을 쇼핑백에 담으려던 점원은 웬일인지 잠시 머뭇거리더니 조그만 메모지에 뭔가를 적어 책들과 함께 담았습니다.

서점을 나선 손님은 무슨 말이 적혀 있는지 궁금해 쇼핑백에서 메모지를 꺼내 읽어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 메모지에는 이런 말이 짧게 적혀 있었습니다.

"많이 힘드시죠?

힘들 땐 힘든 것 그대로도 좋습니다."

집에 도착한 그 손님은 두꺼운 책들은 펴보지도 않은 채, 가장 먼저 그 메모지를 꺼내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러자 이내 그의 마음에는 온기가 돌도록 눈에는 눈물이 고였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그 점원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글을 올리면서 그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어떻게든 살아보려 발버둥치는 와중이었는데 저 말이 가슴 깊숙이 들어와 심장을 후벼 판다."

얼마 전 온라인 뉴스를 통해 알게 된 가슴 훈훈한 미담기사를 짧게 구성해 봤습니다. 저 또한 그 사연으로 깊은 위안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책을 구입하고 그것을 계산하는, 어찌 보면 매우 사무적인 관계인 손님과 점원 사이에서도 봄이 찾아오는 기적이 느껴집니다. 세상에 봄을 전하는 것은 훈훈한 바람이나 화려한 꽃들만이 아닙니다.

한마디 나누지 않았어도 마치 긴 이야기를 이해한 듯 바라보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눈길에서도 봄은 옵니다.

점원의 메모지는 작지만 거기에 담긴 배려는 크고, 메모 글은 짧지만 거기에 담긴 위로는 깁니다. 작은 메모지 한 장 같은 짧은 봄 안에 얼마나 크고 긴 사랑이 담길지 설레기 시작합니다.

대전교구 주보에 기재 된 이충무 바오로 극작가. 건양대 교수님의 글을 옮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