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牧者의 지팡이

인간 생명의 시작과 끝, 침해할 수 없다

  • 인간 생명의 시작과 끝, 침해할 수 없다

서울대교구 교구장 정순택 대주교가 주교좌 명동대성당 앞마당에서 열린 생명 존중 행사에 참여해 태아 모형을 안아 보고 있다.

“인간 생명은 마지막 순간까지 스스로든 타인에 의해서든 침해할 수 없는 신성함을 지닙니다.”

서울대교구 정순택 대주교가 7일 생명 주일을 맞아 봉헌한 ‘생명을 위한 미사’에서 생명 존중과 멀어지고 있는 정부의 입법 행태를 질타하며 조속한 후속 조치를 요구했다.

정 대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우리나라의 시급한 생명 이슈인 ‘낙태와 관련된 생명보호 입법’에 대해 “국회는 이쪽저쪽 눈치만 보면서 후속 입법을 미루고 있는 상황”이라며 “공공연하게 낙태 시술 광고까지 이뤄지고 있고, 과거보다 훨씬 많은 낙태 시술이 행해지고 있다”고 생명의 가치를 외면하는 현실을 지적했다.

2019년 낙태죄 처벌 조항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국회는 2020년 12월까지 관련 조항을 개정해야 했다. 그러나 국회는 법을 고치지 않았고 이로 인해 2021년 1월 관련 조항이 효력을 상실하면서 사실상 낙태죄가 폐지됐다고 해도 무방한 상황이다.

정 대주교는 “가톨릭교회는 산모의 생명이 위험해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한 낙태는 어떠한 시기에 상관없이 생명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는 점을 단언하며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며 “신자라면 법의 허용 여부와 상관없이 낙태를 거부하고 태아의 생명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고 거듭 당부했다. 아울러 “정부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임신부들이 안심하고 출산을 선택할 수 있도록 힘을 쏟아야 한다”며 “유럽의 일부 국가와 같이 아이의 양육을 국가가 적극적으로 책임질 필요가 있다”고 정부에 역할을 다할 것을 요청했다.

정 대주교는 2022년 6월 발의된 조력존엄사법도 우려했다. 정 대주교는 "우리는 안락사의 한 형태인 의사 조력 자살의 합법화라는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며 “진정으로 존엄하고 품위 있는 임종을 돕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관심과 돌봄이지 생명을 단축하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사 조력 자살은 우리 사회가 경제적인 효율성만을 추구하며 인간적인 관심과 돌봄의 문화를 잃어버린 결과일 뿐”이라며 “호스피스와 완화 의료 지원을 확대해 환자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인격적인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법률과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안락사와 다름없는 조력존엄사법에 대해 비판했다.

정 대주교는 강론의 상당 시간을 할애해 교회가 지키고자 하는 태아의 생명뿐만 아니라 생애 말기에서 고통 받는 이, 노동현장의 근로자, 미혼부모와 한부모, 인신매매 피해자, 전쟁범죄 희생자들의 생명의 가치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가 생명 존중과 보호에 대한 노력을 더욱 기울일 수 있도록 기도하자”고 격려했다.

미사가 진행되는 서울 주교좌 명동대성당 앞마당에서는 생명위원회가 마련한 생명 존중 문화 행사가 열렸다. 생명위는 생명 전시, 태아 안아보기 체험, 태아 퍼즐 맞추기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생명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할 기회를 마련했다.

33주차 임신부인 유진임(엘리사벳, 36)씨는 “뱃속의 아이가 커 갈수록 또 하나의 심장이 내 안에서 뛰고 있다는 것을 매일 경험하고 있다”며 “곧 태어날 아이를 만나기 전 생명 존중 행사를 통해 다시금 생명의 소중함과 그에 대한 책임감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