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은 나이 들지 않는다
여든이 넘은 연세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크고 우렁찬 목소리를 지닌 마리아 자매님은 아무 조건 없이 무작정 시골로 시집을 오셨다고 합니다. 스무 살 때 심훈 작가의 「상록수」를 읽고 주인공 최용신처럼 농촌계몽 운동을 펼쳐 보리라는 원대한 꿈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집에서 왕복 두 시간이 걸리는 무료급식소까지 걸어와 설거지 봉사를 하고, 다시 돌아가는 자매님께 버스비라도 드리려 하면 봉사의 공이 사라진다며 극구 사양하십니다. 주변의 어려움을 보면 달려가서 나의 일처럼 거들어 주었던 자매님은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항구 선착장에서 물고기 선별하는 일로 받은 품삯으로 빚을 조금씩 갚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일로 머리가 복잡할 때면, 주변 상황에 안주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고 계신 마리아 자매님이 떠올라서 무작정 전화를 드리곤 했습니다.
“요즘도 선착장에서 일하고 계세요? 본인이 사용한 것도 아니고 이웃을 도와주려는 좋은 마음으로 보증 선 것이 잘못되어 편안해야 할 노년에 고생하고 계시니 하느님이 원망스럽지는 않으세요?”
“처음에는 너무나 큰 금액이라 엄두도 나지 않고 억울한 마음도 들었지만, 내가 잘못한 것인데 하느님을 원망하면 안 되겠더라고요. 한꺼번에 빚을 갚을 수는 없지만, 조금씩 갚다 보면 끝이 보이겠지 하고 10년을 갚다 보니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요. 요즘은 관절이 좋지 않아서 선착장 일을 할 수 없으니 매달 나오는 노령연금 25만 원 중에서 20만 원은 빚 갚는 데 쓰고, 1만 원은 어려운 분들을 위해 빈첸시오회 회비 내고, 4만 원은 주일 미사 때마다 봉헌금으로 내고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봉헌금을 만 원짜리 내는 것을 보고 옆에 앉은 할머니가 천 원짜리 내라고 쿡쿡 찌르더라고요. 그 할머니는 자식들이 모두 잘 돼서 용돈도 많이 받는 할머니인데 저보고 못사는 사람이 분수를 모른다고 할까 봐, 지금은 성당에 일찍 가서 미사 전에 봉헌 바구니에 먼저 예물을 봉헌하고 미사를 드리고 있어요.”
“자신을 위해서 쓰는 것이 없는데 생활하기가 힘들지 않으세요?”
“요즘 사람들은 풍족해서 그런지, 쓸 만한 것을 너무나 많이 버려서 그것들을 주워 재활용도 하고 부지런하게 움직이기만 하면 먹을 것도 많이 생겨요. 배불러서 못 먹은 적은 있어도 배고파서 못 먹은 적은 없어요.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나서 가장 좋은 것은 유익한 것만 달라고 빈말만 되풀이하는 기도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과 우리 모두를 위해 바치는 기도문으로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제일 좋아요.
주변 사람들은 나를 보고 다른 사람들이 주는 옷을 얻어 입으면서 미용실도 가지 않고 무슨 낙으로 사느냐고 물어요. 그러면 저는 사람이 속에 든 알맹이로 사는 거지, 겉모양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해요.”
“조심스럽게 질문 드리고 싶은데요. 행복한 노년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저의 형편을 보면 불쌍하게 살고 있다고 남들은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행복하고 기쁩니다. 농촌 계몽까지 이루지는 못했지만, 검소한 생활과 신앙생활은 제가 젊은 날 꿈꾸었던 삶이거든요. 지금도 젊은 날의 꿈을 계속해서 실현해 가고 있으니 아직도 청춘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든이 넘은 연세에도 기쁨과 확신에 찬 당당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이냐고 여쭙자, 조금도 망설임 없이 ‘믿음’에서 오는 것이라고 대답하는 마리아 자매님을 보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우리의 꿈은 나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루어가는 것이기에, 노년이 되어도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은 멈추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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