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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

철새들의 지저귐은 절박함이 빚어낸것이라네

철새들의 지저귐은 절박함이 빚어낸것이라네

픽사베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숲

숲은 아무 때나 아름답다. 특히 요즘처럼 짙푸른 여름 숲도 그렇지만, 다른 어느 계절에도 그러하다. 봄이면 봄인 대로, 가을이면 가을인 대로, 눈 덮인 시간이면 눈을 뒤집어쓰고 있는 모습 그대로. 숲이 늘 아름다운 까닭은 충분히 다양한 요소들이 뒤섞이고 어우러지면서 그 아름다움을 빚기 때문이다.

우선 숲이 철마다 바꿔 드러내는 흉내 내기 어려운 빛깔을 보라. 허공으로 튀어 오르며 빛을 마시고 싶은 욕망을 한껏 머금은 어린 가지들의 붉은 빛. 막 터져 나온 새 이파리들이 펼치는 환희의 연둣빛, 담록(淡綠)을 지나 초록(草綠), 초록을 지나 암록(暗綠)을 띄었다가 제 고운 단풍으로 드러나는 노고에 찬 잎사귀들의 빛깔, 빛깔. 서리를 지나 쌓이는 눈발을 옷으로 입고 아무렇지도 않게 서있는 겨울 빛.

어느 화가가 이 실상들을 다 표현할 수 있을까. 풍성하고 다양한 소리는 또 어떤가? 서 있는 나무와 풀과 바위와 계곡을 헤치며 들려오는 새들의 노래 소리, 어디에서 출발하고 어디로 가는 것인지 도무지 알 길 없는 바람이 날마다 불어오고 불어가며 일으키는 소리들, 그리고 종종 고요. 그 고요를 느닷없이 깨트리며 딱- 따-르르르- 어느 새가 거침없이 나무에 구멍을 뚫는 소리, 그 신비.

무슨 사연으로 나뭇가지나 줄기가 부러지는 소리, 그리고 떨어지며 바닥과 부딪는 소리, 물들었던 이파리 툭, 혹은 차르르- 떨어지고 구르는 소리, 푸른 날에는 관찰자의 마음마저 초록으로 일렁이게 하는 소리. 젖은 날에는 내 마음마저 젖어들게 하는 소리. 그 온갖 소리와 질감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향기는 또 어떤가? 각양각향의 꽃향기, 숲 바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 특별한 흙냄새, 더러 비를 먹은 뒤 풍겨내는 싱그러운 숲 냄새. 죽음을 딛고 일어서는 곰팡이와 버섯들의 향, 온갖 향기의 그 풍요를 인간이 만드는 화학적 가공품들이 어떻게 온전히 흉내 낼 수 있겠는가.

숲을 산책하듯 서성이다가 숲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조화와 신비에 부복하면 몸은 저절로 느긋한 이완, 마음은 갖은 시름을 잊고 저절로 평화에 이른다. 이런 까닭에 숲은 인간이 갈 수 있는 그 어느 공간보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이다.

픽사베이

하지만 숲은 아우성치는 삶의 현장

우리에게는 더 없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공간이 숲이지만, 숲은 동시에 결핍과 과잉, 각축과 쟁탈이 점철하는 공간이다. 더 없이 아름다운 평화가 흐르고, 나아가 우리에게 이완과 치유를 선물하는 공간이 숲이라지만, 그곳에 사는 생명들에게 숲은 그 어느 생명들의 공간보다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때로는 여기저기서 전투가 벌어지는 전쟁터다. 총성이 들리지 않을 뿐, 피 흘리지 않을 뿐, 수풀과 동물 모두에게는 한 치의 방심도 허용되지 않는다. 숲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모든 생명은 따라서 성실해야 한다. 성실한 존재들만이 숲 공동체의 주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숲은 생명 저마다가 안고 있는, 극복해야 할 과제와 그것을 풀어내는 아우성으로 그득하다. 숲이 지닌 놀라움 중의 하나는 그 숙제를 풀어가는 아우성 속에서도 저마다 평화를 찾고 더불어 조화에 이르는 방법을 찾아낸 생명 공동체의 공간이라는 점이다.

지금부터 계절과 관련하여 그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숲, 생명이 펼쳐 보이는 삶의 현장 몇 곳을 살펴보자. 그리고 그 아우성 속에서 어떻게 부과된 치열함을 이겨내고 저마다 자신의 삶을 지켜내고 또 성장하며 꽃 피워 결실을 이루는지 살펴보자.

퀴즈

대극(對極)은 모든 시공을 관통하는 거스를 수 없는 만물의 이치다. 아름다운 조화로 표상되는 숲의 이면에는 생명과 생명, 생명과 그의 환경 사이에 긴장과 대립이 있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삶의 아우성이 속절없이 놓여 있다. 이 이야기를 조금 더 부드럽게 풀어가기 위해 새와 꽃에 관한 퀴즈를 준비해 보았다. 먼저 새에 관한 퀴즈다. 속도를 줄여 읽고 그동안의 감각 경험을 떠올려 홀로 답해 보시면 좋을 듯하다.

① 철새와 텃새 중에 어떤 새가 더 곱게 노래할까?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일까?

(힌트! 혹시 숲 가까운 거주지에 사는 분이라면 그곳에서 여러 계절을 겪으며 들었던 새소리의 경험을 떠올려 보라. 그런 행운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숲 근처의 휴양지나 캠핑장에서 보낸 경험이라도 떠올려 생각해 보라. 어느 계절에 새들의 노래를 가장 풍성하게 들었는지.)

철새

답을 말하기에 앞서 철새와 텃새에 관해 간략히 짚고 가자. 텃새와 달리 철새는 먼 거리를 이동하며 살아가는 생활사를 택하고 있다. 왜 그럴까? 그 근본적 이유는 계절 역시 대극의 로고스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북극에 가까운 고위도 지역일지라도 서로 반대되는 계절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또한 그것은 교대하며 순환한다.

철새는 이 대극의 질서 위에서 계절이 자신들의 삶에 불리한 쪽으로 변할 때, 즉 기후와 먹이조건이 나빠질 때, 그 열악함을 극복하기 위해 과감히 먼 길을 나선 존재들이다. 때로 험준한 산맥과 위험한 바다를 건너야 하는 고단함과 위험을 과감히 껴안은 새들이다. 그들은 보다 적합한 서식 환경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는 모험을 감행했고, 모험에 성공한 그 유전자가 그들에게 대를 이어 계속 전승되고 있을 것이다.

계절이 변한다는 것은 해의 길이가 이전 계절에 비해 확연히 길어지거나 짧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해의 길이가 변하면 기온도 달라진다. 새의 입장에서 보면 기온 변화는 자신들의 먹이 조건이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먹이가 풍요로워질 수도 있고, 부족해질 수도 있다. 먹이가 부족해지는 여건으로 변화할 경우, 그 서식지를 뒤로 하고 먹이가 풍부한 공간을 찾아 떠나는 새들이 있는데 이들이 바로 철새인 것이다.

우리 고전 <흥부전>에서 두 형제에게 박 씨를 물어다 준 제비를 기억할 것이다. 가옥환경과 자연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지금은 만나기가 훨씬 귀해진 새지만,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제비는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대표적인 여름철새였다. ‘여름철새(Summer Visitor)’는 우리나라의 봄과 함께 찾아와 번식하고, 여름이 지나면 다시 월동에 적합한 따뜻한 서식지를 찾아 이동한다.

우리나라를 찾는 철새에 여름철새만 있는 건 아니다. 재두루미나 참수리, 큰고니, 큰기러기, 검은머리갈매기 같은 새들은 대표적인 겨울철새들이다. ‘겨울철새(Winter Visitor)’는 늦가을에 우리 땅으로 찾아온다. 우리 땅의 겨울 계절에서 상대적으로 따뜻한(?) 월동의 시간을 보내고(월동지), 이른 봄이면 다시 한반도보다 더 북쪽에 위치한 고위도 지역(번식지)으로 날아가 번식을 하는 새들이다.

물도요새, 검은머리촉새, 검은가슴물떼새, 비둘기조롱이, 제비딱새 같은 새들은 또 다른 철새 그룹으로 분류한다. 이들은 일명 ‘나그네새’라고 부르는 그룹에 속한다. 나그네새를 다른 표현으로는 통과철새라고도 한다. ‘통과철새(Passage Migrant)’는 말 그대로 우리 땅을 경유지로 활용하는 철새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들 중에는 시베리아 등 고위도 지역에서 번식하고, 그곳에 혹독한 추위가 찾아오기 전에 우리나라보다 더 따뜻한, 멀리 호주나 뉴질랜드 까지도 날아가 번식지의 추운 계절을 회피하여 월동한 뒤 되돌아가는 새들이 있다. 이 때 우리 땅을 경유지로 삼는 새들을 일컬어 나그네새라고 부르는 것이다. 한편 텃새가 아닌 새 중에 ‘길잃은새(Vagrant)’들도 있다.

이들은 본래의 이동경로나 서식 공간을 벗어나 우연한 계기로 우리나라를 찾은 새로, 규칙적으로 이 땅을 찾아오는 일반적인 철새와 구분된다. 이들이 본래의 경로를 벗어나게 되는 계기는 태풍 같은 긴박한 기상 사태를 만난 경우, 또는 우리나라를 찾는 다른 철새 무리에 어쩌다가 합류하여 들어오는 경우 등이 있다.

텃새

이제 텃새로 관심을 옮겨보자. 텃새는 사계절 이 땅을 떠나지 않고 이 산하가 펼치는 리듬 전체에 자신을 맞춰 살아온 새들이다. 따라서 같은 리듬 위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철새보다 텃새가 더 익숙하기 마련이다. 텃새는 주로 어디에 서식할까? 나무와 풀이 그렇듯, 텃새들 역시 자신들이 살아가는 서식 공간이 저마다 다르다.

부들이나 창포, 버드나무 같은 식물이 물이 풍요로운 땅을 서식지로 삼듯, 원앙이나 왜가리, 논병아리 등은 습지나 계곡, 하천 근처를 주된 서식 공간으로 삼는다. 육지의 물만이 아니다. 괭이갈매기나 가무우지, 바다쇠오리 같은 텃새들은 바닷가나 섬처럼 해양생태계 가까운 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다. 민들레가 두루 사는 땅인 정원이나 인근 공원 같은 곳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익숙한 텃새로는 아마도 대략 까치와 까마귀, 참새, 또는 양비둘기나 더러 멧비둘기 등이 있다.

한편 까투리(암컷 꿩)나 장끼(수컷 꿩)를 만나고 싶다면 어디로 가는 것이 좋을까? 마을로부터 경작지나 무덤을 거쳐 숲으로 이어지는 숲정이 근처를 서성여야 만날 확률이 높을 것이다. 박새류나 물까치, 오목눈이나 붉은머리오목눈이 같은 새들도 숲 가장자리 이쪽저쪽에 머물러야 만나기 쉽다.

동고비나 어치, 박새류나 직박구리, 딱따구리를 만나려면 그들이 주로 기대어 사는 숲으로 가야하고, 그 중에서도 올빼미 같은 맹금류가 주로 머무는 자리를 만나보고 싶다면 숲의 가장자리나 낮은 곳보다는 깊은 지점, 높은 공간을 서성이는 편이 확률이 높다.

픽사베이

철새가 텃새보다 더 곱게 노래하는 까닭

지금까지 텃새와 철새를 간략히 짚어보았다. 이제 퀴즈로 돌아오자. 위에 제시한 퀴즈 ①의 답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텃새보다는 철새의 소리가 더 곱다. 왜 그럴까? 철새들에게 부과된 삶의 숙제가 상대적으로 더 절박하기 때문이다. 철새들에게 놓인 숙제라…. 무엇이 있을까? 그 배경과 사연을 헤아려 보자.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절기는 하지(夏至) 근처이다. 동지(冬至) 앞뒤로 붙어 있는 대여섯 달 동안 들을 수 있었던 새소리는 몇 종류나 되었고 얼마나 빈약했는지 떠올려 보라. 반대로 봄부터 지금까지 가까이 혹은 멀리서 들리는 새소리들은 얼마나 풍성해졌는지 주의 깊게 떠올려 보라. 계곡과 연못 등에서 개구리가 소란할 정도로 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할 무렵부터, 겨울에는 귀 기울여도 들리지 않았던 완전히 새로운 새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을 것이다.

‘호, 호, 호, 호.’ 소리는 약간 스타카토(staccato)를 닮았다.

먼저 저렇게 네 음절로 나누어 한 소절을 이루고, 그것을 반복적으로 노래하는 새소리를 기억하는가? 비교적 자연에 무관심한 사람일지라도 웬만하면 저 새소리는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 소리는 숲으로 찾아오는 대표적인 여름철새의 한 종인 검은등뻐꾸기가 내는 소리다. 봄철 이 녀석이 내는 소리는 다른 소리들을 압도하면서 다가와 단박에 귀에 박힌다. 저 소리를 매년 처음으로 듣는 날에 나는 홀로 반가워서 버릇처럼 외친다. ‘왔구나!’ ‘반갑구나!’ 그리고 안도하며 생각한다. ‘너와 내가 함께 지난겨울을 탈 없이 건너와 또 한 번의 찬란한 봄을 만나는구나.’

뒤이어, 혹은 비슷한 시기에 들리기 시작하는 꾀꼬리의 노랫소리는 철새들의 소리 중 단연 으뜸이다. 안타깝게도 내게는 그 아름다운 음색과 가락을 흉내 내 전달할 재주가 없다. 유리왕이 지은 노래로, <삼국사기>에 수록돼 전해지는 ‘황조가(黃鳥歌)’의 노란 새, ‘황조’가 꾀꼬리라는 것은 모두 알 것이다. 하지만 정작 꾀꼬리가 부르는 새의 노래를 여태 알지 못한다면 누리집을 검색해 꼭 한 번 들어보시기 바란다.

노란 몸 색도 아름답지만 그 노랫소리는 가히 절창(絶唱)이요, 으뜸 중에 으뜸이다. 예로부터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에게 ‘목소리가 꾀꼬리 같다’고 한 근거를 저항 없이 수긍할 것이다. 또 다른 여름철새인 소쩍새는 누구나 알 것이다. ‘소쩍-소쩍-’ 그들의 노래가 들리는 밤이면 나는 까닭 없이 위로를 얻곤 한다. 이렇듯 철새가 돌아오면 숲은 날마다 풍성한 소리로 채워지고, 숲으로부터 얻는 활력과 위로는 한층 더 커진다.

텃새들의 소리는 어떤가? 여름철새들에 비해 대체로 둔하고 우리 귀에 꽂히는 강도도 낮은 편이다. 박새나 딱새, 참새처럼 몸이 작은 새들의 노래를 떠올려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물론 부엉이나 까마귀, 까치, 혹은 조금 소란을 떠는 직박구리처럼 상대적으로 전달력이 높은 새소리도 더러 있지만, 여름철새들의 절창에 비하면 음색이며 음률이며 크게 견줄만하지 못한 실정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철새들의 노랫소리가 더 고운 것일까? 나는 그 이유를 철새가 극복해야 할 절박한 숙제 때문이라고 파악한다. 이 땅의 텃새들과 달리, 여름철새는 우리나라를 번식지로 삼고 들어와 도처로 흩어진 생명들이다. 그들은 이 땅에서 우리의 계절 조건이 허락하는 유한한 시간 동안 기필코 짝을 찾아야 한다. 그 짝과 사랑을 하고 알을 낳고 포란(抱卵)을 하고 자식을 키운 뒤, 추운 계절이 오기 전에 자신들의 월동지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니 정해진 시간 안에 짝을 찾아야 하는 그들의 노래는 곱고 매혹적이어야 한다. 멀리까지 뚫고 나가야 한다.

절박한 생활사를 지닌 철새들이 멀리서 부르는 그 곱고 매혹적인 노래는 차라리 아름다운 아우성이다. 그 노래를 우리는 철마다 공짜로 듣는다. 그들이 천년만년 이 땅으로 날아오기를, 그럴 수 있도록 이 산하가 더는 무분별하게 파헤쳐지지도, 병들지도 않기를.

글 김용규(충북 괴산, 여우숲 생명학교 교장)

*이 시리즈는 대우재단 대우꿈동산과 함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