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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김수환 추기경

<화해 할 줄 아는 용기>

 

<화해 할 줄 아는 용기>

지금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해볼 만한 가장 위대한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권력을 사심 없이 화해의 도구로 사용하는 결단'입니다. 여기에는 실로 최상의 용기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야말로 신명을 하느님에게 바치는 믿음에서만 그와 같은 용기가 나올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자기를 버리고 죽으려 할 때 살고, 이기적으로 살려 할 때 죽는다는 것은 진리입니다. 진정으로 위대한 용기를 지닌 이는 살아남는 이 진리를 터득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용기는 민족의 역사를 소생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노늘날 우리 사회는 불신과 불화로 심각한 내부 분열을 겪고 있습니다. 선의의 대중은 각종 매스컴을 통해 진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데 거기에 응해 주는 이들이 너무 부족합니다. 이것은 가뜩이나 산업사회가 오락과 소비문화로 대중을 우중화(愚衆化)하는 성향을 방치하고 있는 셈이 될 것 같습니다.

일깨움을 받는 국민, 깨어있는 국민이라야 역사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습니다. 양심있는 지성인들의 융통성있고 슬기있는 참여가 고려되어야 할 단계인 것 같습니다.

근로자들은 열악한 근로조건 속에서 심중에 갈등을 품을 뿐이고 기업주들과 제대로 의사 소통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농민들은 오랜 기간 지속되는 적자 영농문제로 국가 경제구조 자체에 대한 비판의 소리를 모으고 있습니다. 학원가에서는 스승과 학생들 사이에 단절이 생겨 있습니다.

우리 국민 모두는 자나깨나 분단의 재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광복 후 반세기가 넘도록, 통일의 기운이 조금이라도 성숙되어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불신과 증오를 굳혀 온 것으로 보게 됩니다. 오늘의 세계안에서는 남한도 북한도 세계화에 동참해 나아가야 합니다.

따라서 남북한은 내부에서부터 서로 증오를 키우는 일을 중단해야 합니다. 서로 증오를 누그러뜨리지 않는 한 통일은 백년이 가도 안 될 것입니다. 긴요한 일은 민주주의와 개방체제의 육성이지 상대적 증오가 아닙니다.

우리 민족 내부의 이 모든 분열을 타파하는 길에 있어 권력을 화해의 도구로 전환해 사용하는 지도자가 나온다면 그는 진정으로 용기있는 애국자일 것입니다. 그러한 용기는 민족의 활로를 결정적으로 타개한 것이며 지도자 개인도 민족의 역사 안에 길이 살아남아 있을 것입니다.(2011.5)

- 김수환 추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