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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生 신앙의 나그네 길

< 자기에게도 좋고 남에게도 좋은 일 >

< 자기에게도 좋고 남에게도 좋은 일 >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쯤은

‘나는 왜 태어났으며 왜 사는가?’라는

의문을 품어보게 된다.

내게는 그 시기가 스무 살 때였던 것 같다.

당시 나는 프랑스 작가 카뮈의 ‘이방인’이라는

소설을 읽고 삶과 죽음에 관한 문제에

무척 천착해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톨스토이의 책에서 이런 구절을 읽었다.

“‘사람은 왜 사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은

사람이 대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사람은 단지 의문을 제기하는 것만으로 족할 뿐이다.

그러나 바르게 사는 법은 알 수 있다.

그것은 자기에게도 좋고

남에게도 좋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왜 사는가에 대한

의문도 저절로 사라진다.”

그래서 나도 좋고 남도 좋은 일이

무엇인지 따져보기 시작했다.

세상일이란 달밤에 혼자 체조하는 일 이외에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무슨 일이나 남과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내가 좋으면 남이 나쁘고,

남이 좋으면 내가 나쁜 일이 많다.

더구나 세상에는

나 좋은 일만 하고 살기도 벅찬데

어떻게 남까지 좋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대체로 자기만 좋고

남에게 나쁘면 미움을 받게 되어있고,

자기는 나쁜데

남만 좋으면 오래 버티지 못한다.

내가 좋은 일은 밤을 꼬박 새울 수 있지만

내가 싫은 일은

잠시도 싫은 것이 사람의 속성이다.

그래서 법원에서 범법자들에게는 일정기간 동안

사회 봉사활동을 하도록 판결을 한다.

그것은 봉사활동이 내가 싫고 남만 좋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우한 이웃들을 위해

자원 봉사활동에 나서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봉사활동이 싫으면서도

억지로 나선 사람들이 아니다.

남 돕는 일은 싫으면 못 하는 법이다.

그런데도 정성을 다하는 것을 보면

희생과 봉사도

타고나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지하철에 뛰어들어 사람을 구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그 정신을 크게 기리는 것이리라.

그러므로 ‘남 신세 안 지고

나만 죄 안 짓고 살면 된다.’는 생각은

바르게 사는 방법이 아니다.

바르게 산다는 것은

나도 좋고 남도 좋은 일을 하는 사람,

즉 남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는 일을

내가 좋아서 해야 한다.

그래서 세상을 바로 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것은 극소수의 선택된

천사들만이 누리는 삶이고,

그런 사람들에게는 ‘나는 왜 사는가?’라는

질문이 필요 없는 것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 작가 | 유홍종(베르나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