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 수녀의 새해편지
<해인 수녀의 새해편지>
나는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싶다’고
나이 오십에 시를 쓴 적이 있네
30년이 지난 지금의 나는 이제
멀리 외딴 곳이 아니라
도심 한 복판이나 시장터 언저리에
허름한 집을 얻어
오는 사람 가는 사람
열심히 관찰하고
그들 위해 기도하며
여생을 보내고싶다
그런 생각을 하네
결국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
더 중요하다는 걸
거기가 바로 구원의 장소라는 걸
왜 이리 늦게야 알아듣는 것인지!
- 이해인의 시 ‘어떤 생각’
안녕하시지요?
또 다시 밝아 온 새해 2024년! 청룡의 해라고 사람들이 푸른 용의 그림을 많이 보내주네요. 높이 비상하라는 기원과 함께!
오늘 아침엔 ‘망팔(팔십을 바라보게 되니까)이라는 화장터의 단상으로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 소설가 김훈님과 직접 통화를 했고, 호스피스병동에 입원중인 동기 수녀님 면회 가기로 배차까지 받아놓고 속탈이 도져 합류하질 못해 마음을 추스르는 중! 2012년 6월에 담근거라고 누가 준 매실액을 한방소화제랑 같이 먹었답니다.
물리치료 받고 허리가 좀 나아지니 또 다른 데가 고장이 나고 기계를 오래쓰면 망가지듯이 인간의 몸도 노화되면 여기저기 탈이나게 되어있는 게 직접 경험해보니 확실하네요.
올 해는 제가 수녀원에 온지 60주년, 첫서원 한 지 56주년, 첫시집<민들레의영토> 발간 48주년, 그리고 1945년생이다보니 곧 80세를 바라보는 뜻 깊은 해이기도 합니다.
독자들에게 사랑 받는 기도시 ‘오늘을 위한 기도’ 마지막 구절처럼 ‘모든 것에 감사했습니다. 모든 이를 사랑했습니다’라는 고백이 나날의 삶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우리 함께 길을 가기로 해요.
요즘은 저도 이전 같이 편지를 잘 쓰지 못해 죄송하지만 기도 안에 늘 기억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주세요! 그동안의 기도와 저를 위한 관심에도 감사드리면서 안녕히!
2024.1.15. 성 마오로와 플라치도 성인 축일에
cloud 해인 수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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