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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老年의 삶

노후의 행복 - 李崇寧

노후의 행복 - 李崇寧(이숭령:서울대,한양대 명예교수)

나는 가끔 노후의 행복한 생활에 대해 생각할 때가 있다. 이것은 내 나이가 70이 되고 보니 자연 노후의 생활을 심각히 생각하게 된 것이려니 한다. '인생의 황혼기'란 그 말 자체가 초라하고도 서글퍼 보이는 것은 물론이다. 늙어서 행복하기 위한 조건이란 젊어서의 경우보다 훨씬 어려운 것이 아니랴.

젊어서 같으면 우선 건강하다는 조건쯤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늙으면 그 건강하다는 평범한 조건만도 지니기 어려운 것이니, 전연 비교가 되기 않는다. 나는 일찌기 '노인의 행복'을 주장한 일이 있는데, 그 첫 조건은 '건강'이다. 비록 수백 억의 치부를 했다 하더라도 건강이 뒤따르지 않으면 그것은 헛 것임을 누가 아니다 하랴.

나는 여기서 '건강'만을 들고 따져보려 하는데, 생각할수록 '하느님의 공의'를 통감하게 된다. 건강이란, 나이를 먹으면 결코 거리의 주택복권 당첨과 같이 얻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젊어서부터 절조있는 생활로 노력하고 공을 쌓는 자에게 하느님이 내리시는 보수가 곧 건강이 아닌가 생각한다.

내 친구들 중에 젊어서 영웅호걸인 양 자처하면 술을 마구 마시고 으시댄 자들이 있다. 그들은 저녁마다 가는 곳이 술집이고 걸핏하면, “술은 눈물인가 한숨 이련가”라는 유행가를 부르며, “술을 마셔야 인간이 된다”는 등 괴변을 토하는가 하면 싸움도 하고 길바닥에서 누어 자기도 했다. 이런 자에겐 늙어서 건강할 수 없다는 것이 당연한 결론이며 자연법칙의 답이기도 하다.

이런 마구잡이 생활을 한 친구들은 40고개, 50고개를 넘어서면 여기 저기서 적신호가 보고된다. “난 간장이 나빠졌어!”“요새 위궤양이야. 수술을 하라는 거야.”“혈압이 높아 정말 우울해”이런 병이 과연 우연한 결과일지 나는 의심한다.

내 경우를 여기 털어 놓아 보겠다. 나는 지금 건강하다. 그러나 이것이 내가 오래 살 수 있다는 壽(수)에의 因果(인과)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좋은 조건을 닦아 놓은 것은 사실이려니 한다. 나는 해방 전 평양에서 살았다. 연회니 뭐니 하고 끌려 나가서 술 좌석에 합석하게 되는데, 여기서 술도 많이 마셨다. 그래서 술마시는 기분은 나도 잘 알고 있다.

대동강을 내려다 보며 기생을 데리고 술을 마신다는 것은 젊은이들에겐 매력적인 놀이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생활에서 벗어나려고 무척 노력했다. 그리하여 해방과 동시에 서울로 돌아와서는 단연 술을 끊은 것이다. 이후 30여년 나는 술을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다. 이것만은 나로선 자랑으로 여기는 바이다.

나는 공부하는 직업인이라서, 내 생각으론 술을 즐겨 마시고선 공부에 대성할 수 없다고 믿어왔다. 칸트가 술꾼이었던가? 하이데거가 술을 좋아했던가는 생각하면 알 일이다. 나는 술꾼에겐 학자로선 이미 큰 기대를 걸 수 없다고 믿는다. 술은 머리를 둔화시키고 범속화시키고 사고력, 기억력을 빨리 노쇠케 한다고 하겠다.

나는 지금도 오전 2-3시까지 공부 할 수 있으니 이러한 체력은 이 금주에서 얻어진 것이라고 확신한다. 나는 건강을 두 가지 방향에서 생각한다. 그 하나는 생리(生理)의 건강이다. 그러나 건강이라고 하면 이 생리적인 건강만을 연상하기가 쉬운데, 사람들이 또 하나의 건강을 잊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것은 정신적인 건강이다. 기억력, 사고력, 구상력, 독서력 등의 정신적인 건강이 우리 같은 직업인에겐 더욱 필요한 것이 아니랴. 나는 30전후에 바둑을 배우고 한 때는 밤을 새우다시피 바둑에 혹한 터이다. 지금도 남의 바둑을 보면 곧잘“이 사람아! 저거 죽어. 여기 한점 두라고···”하며 보다 못해 한마디씩 실언을 할 때도 있지만, 그러한 내가 일정 때에 그 바둑에서 손을 뗀 것이다.

그 이유는 바둑에 미치면 공부는 그만이며, 바둑은 건강에 해로운 것이라는 것을 느낀 때문이다. 연전(年前)에 전남으로 교양강좌를 나갔더니 대나무로 짜아 만든 바둑판을 선물로 주었다. 그러나 사용해 본 적이 없고 정월에 후학들이 오면 이 바둑판을 내주는 것이 고작이다. 또 최근에 나는 의사의 권고로 담배도 끊었다. 담배를 끊고 보니 커피 맛도 달라지곤 해서 생활에 적지 않은 변화가 온 것 같다.

우리집은 아내도 아들도 다 건강하다. 지금도 우리 내외는 공휴일이면 배낭을 메고 으례 등산을 즐긴다. 이 등산버릇은 나에게는 25년 이상 되풀이해 온 터로 이제는 내 몸에 고질과 같이 배어버려서 아무리 가파른 급경사라도 극복하고야 만다.

때로 겨울날이면 한 짐 가득 장비를 갖추고 산에 오른다. 내 베레모 밑으로 보이는 백발의 터럭을 본 사람이 가끔 나이를 물을 때가 있다. “연세가 많으신 것으로 보이는데 올해 몇이십니까?”“70이요.”“아니 70에 저렇게 짐을 지시고 급경사를 오르십니까?”이런 때의 나의 기분은 최고의 것이 아닌가 한다.

아내는 근래에 와서 산에서의 나의 만용을 견제하려고 따라 나서는 것만 같다. 때로 우리 내외에게는 어느 길로 갈까로 의견의 불일치가 생길 때도 있다. “난 이리로 갈테요. 이것이 우리 실력에 알맞는 것이니.”“그래도 스릴이 좀 있어야지. 저리로 갑시다.”그래서 다소 옥신각신하다가 결국에 가선 내가 지고 만다.

가끔 산길에서 쉴 때에“정말 우리는 행복하지! 모두 건강하니 말이요, 그저 착한 생각, 좋은 일을 해야지 천주님께서 복도 길이 내리실 것 아니요?”가끔 이런 말이 오고 가곤 한다. 나는 술도 먹지 않고 다른 레크레이션에도 관심이 없으니 돈도 쓸 곳이 없는 것 같다.

나는 봉급에서부터 원고료, 그 외 돈 봉투는 세어 보지도 않고 아내에게 내어 준다. 돈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 귀찮기 짝이 없는 때문이다. 아내가 내 포켙의 지갑을 조사하고 돈을 넣어 놓으면 나는 그것으로 만족한다. 나는 부자도 되고 싶지 않으며, 돈도 그다지 필요없다. 돈이 많으면 도리어 화(禍)가 생기는 것으로 생각해 온 만치 나는 서민으로 자처하고, 그렇게 살면 다시 더 바랄 것이 없다고 믿는다.

내가 지금 내 자신의 수입으로 너끈히 살 수 있다는 것도 오랜 세월 술로 낭비하지 않은 덕이긴 하지만, 그로 인해 노후의 행복의 조건이 된 것이 아니랴. 어린 것들이 할아비 할머니를 바라고 와서는“우리 할머니는 돈이 많아”라고 했으면 그만이지 더 바랄 것이 무어냔 말이다.

나는 아내가 아들 내외에게 설교 아닌 훈시를 하는 것을 멀리서 들은 일이 있다. 이것은 가끔 내게도 퉁겨지는 말투이긴 하지만,“행복이란 하룻밤에 부서질 수 있는 것이다. 네가 의사니 말이지만 식구 중에 누가 암이란 진단을 받았다고 생각하면 알 일이 아니냐. 우리는 지금 가장 행복하다고 믿어야 한다. 모두들 건강하고 다 일들을 잘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행복을 지키는 방법을 생각해 봐라. 천주님의 은총으로 행복한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착한 일을 하고, 어진 생각을 가지고 남에게 겸손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아들 부부는 아내의 말에 머리를 숙인다. 정말 우리는 천주님의 은총으로 행복해진 것으로 믿고 있다.

남매를 두었는데 사위는 내 뒤를 이어 서울대학교의 교수가 되고 아들은 의사로 학위까지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기도를 올리지만, 스스로 노력은 않고서“···해 주십사”라고는 하지 않는다. 나는 학자로서 이제 와 본격적인 대작을 내어놓으려고 하는데 지금의 건강이 언제까지 지탱될 것이냐는 내 스스로의 노력 위에서 천주님의 은총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