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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福音 묵상

사순 제3주간 수요일

사순 제3주간 수요일

(신명4.1.5-9.마태5.17-19)

스스로 계명을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고등학교 때 처음 타자기를 보았습니다. 그때만 해도 컴퓨터는 보편화되지 않았지요. 따라서 타자기는 너무 신기했습니다. 더군다나 직접 타자를 쳐보면서 종이에 글이 찍히는 것을 보면서 마치 책을 출판하는 것 같은 느낌에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당연히 자판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제 이름을 타자 치는 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특히 두 손가락만을 이용한 독수리 타법이라서 1분에 3~40개의 단어만 띄엄띄엄 타자할 수 있었습니다.

그 뒤에 실력을 향상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두 손가락의 독수리 타법으로는 실력 향상이 불가능했습니다. 저의 이 독수리 타법을 본 누군가가 양손을, 그러니까 모든 손가락으로 타자를 하면 속도가 빨라진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계속된 연습으로 양손을 모두 사용할 수 있었고, 또 타자기 자판도 모두 외우면서 속도가 비약적으로 향상했습니다.

한때, 1분에 800타까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그 당시에 두 손가락만 사용하는 독수리 타법만을 고집했다면 실력 향상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의 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습관을 몸에 익히면서 비로소 향상될 수 있었던 것이지요.

과거의 방식에만 매여있으면 어떤 발전도 이룰 수 없습니다. 새롭게 변화하는 모습을 만들어 갈 때, 우리는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주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와 너무 다른 이 현재를 살면서, 이 현재에 맞게 신앙생활도 계속 변화 발전시켜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그때가 좋았어.’만을 외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 시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과거에만 매여있었습니다. 모세의 율법만을 강조하면서 그 틀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조항은 모두 613개에 이르지요. 사실 이 조항 613개를 거슬러 올라가면 십계명이 되고, 또 이를 다시 줄이면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요약됩니다.

이 사랑이 율법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과거에 매여있는 종교 지도자들은 사랑은 보지 않고 613개의 조항만을 봅니다. 사랑의 삶을 살 수 없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사랑 안으로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내용이 녹아 들어갔음을 이야기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율법과 예언서의 완성은 사랑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매인 삶이 아니라, 지금 실천해야 하는 사랑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사랑 안에서만 우리는 하느님 나라로 힘차게 걸어갈 수 있습니다.

-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

오늘의 명언: 고통은 지나가지만, 아름다움은 영원하다(르누아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