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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서 왜 절해유?

정목스님과 함께하는 행복한 마음연습

사랑은 사랑으로 돌아옵니다

정목스님과 함께하는 행복한 마음연습

  • 수정 2024-03-06 07:40등록 2024-03-04 11:12

정목 스님. 사진 유나방송 제공

“ 선생님 , 왜 사람은 꼭 학교에 다녀야 하나요 ? 꽃과 나무들은 학교에 안 다녀도 잘 사는데요 ”

학교 선생님에게 이런 질문을 해 선생님을 곤혹스럽게 하곤했던 16 살 소녀는 서울 성북구의 한 절로 비구니스님을 찾아가 머리를 들이밀며 깎아달라고 막무가내로 졸랐다 . 소녀는 깨끗한 흰 종이위로 머리카락이 삭삭 잘려나갈 때 보통의 삭발장면과 달리 너무 시원해 싱글벙글 웃으며 날아갈 듯 기뻐했다 .

오랫동안 불교방송에서 가르빙가같은 목소리로 불자들의 마음을 피안으로 이끌었던 비구니 정목 스님의 삭발 날 모습이다 . 정목 스님의 신간 ‘ 사랑은 사랑으로 돌아옵니다 >( 김영사 펴냄 ) 을 따라 티 없이 맑은 10 대 비구니 스님의 고행과 수행과 순례를 따라가며 울고 웃다 보면 몸과 마음에 켜켜이 쌓여있던 무거운 짐들이 부려진 듯 가벼워진다 .

삭발을 하고 반년쯤 지난 무렵 , 심한 몸살감기에 걸려 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오르고 정신이 희미해져 물 한 모금 못 마실 정도로 아팠을 때 , ‘ 몸이 허약해 휴식을 취하고 잘 먹어야 한다 ’ 는 의사의 말에 은사 스님께서 동네 가까이 사는 어느 보살님께 부탁해 소꼬리를 고아온 국물을 도저히 삼키지 못하고 토해버렸던 그를 보며 눈시울을 적시던 은사 광우 스님 . 국이 짜거나 싱겁거나 , 반찬이 맵거나 시거나 밥이 되거나 질거나 상관하지 않고 행여 누군가 반찬이나 밥이 잘못되었다고 채공 ( 반찬 담당 ) 이나 공양주 ( 밥 담당 ) 를 나무랄세라 얼른 ‘ 아이고 맛나다 , 아이고 맛나다 ’ 를 연발하시던 성문 노스님 .

20 대 초반 방랑자가 되어 이 산중 저 산중을 떠돌던 중 첨첩산중의 누옥 심원사에 찾아가 맨밥에 김치 한가지로 먹으며 지내다 심원사 스님이 탁발을 나가고 홀로 있던 중 뱀을 잡으러 다니는 땅꾼들을 보고 온종일 두려움에 떨던 젊은 스님 . 전기도 없는 오지 산골에서 비구니의 몸으로 수행하며 오고 감에 미련 없이 모든 걸 훌쩍 버리고 떠난 스님을 40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리워하는 스님….

 

산중일기같은 스님의 글에서 전해오는 치열하면서도 검박한 옛스님들의 풍경이 읽는 이들도 함께 순례에 동행케한다 .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은사스님이 출타하고 혼자 절을 지키다가 ‘ 홀로 사는 할머니가 임종할 것 같아 누군가 옆에 있어 줘야 할 것 같다 ’ 는 동네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할머니를 주물러드리다가 임종한 줄도 모르고 밤새 염불을 하며 곁을 지키는 어린 (정목)스님이 애잔함을 안겨준다 .

봉사활동에 나선 정목 스님이 안양의 어느 개천가에서 만난 1 급 뇌성마비 장애인의 사연은 더하다 . 자신을 극진히 돌보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자고 일어나보니 형제들이 몽땅 사라지고 없어져 헌 종이나 빈 상자를 주워 입에 풀칠을 하면서도 동생들을 원망하지 않고 어머니의 산소에 가서 알아듣기 힘든 발음으로 ‘ 어머니의 노래 ’ 를 부르던 그 장애인에 대해 스님이 전해준 사연은 북받치는 서러움을 공명하게 한다 .

정목 스님. 사진 유나방송 제공

정목스님은 특이하다면 참 특이하고, 불교적으로 보면 전생부터 이어져 온 불연이 느껴진다. 출가 전 열여섯살 소녀가 인천 용화사로 당시 묵언스님으로 불리던 선승 송담 스님을 찾아가 스님으로부터 ‘이 뭐꼬’ 화두를 받은 인연부터가 그렇다.

출가 초기 당대의 고승이던 경남 양산 영축산 통도사 극락암의 경봉스님을 한나절 시봉하는 모습 또한 한편의 동화 같다. 체코의 대통령궁에서 우연히 하벨 대통령을 만난 일화까지 범상치 않은 인연의 실타래가 이어진다. 특히 가톨릭 수녀, 원불교 정녀들과 함께 삼소회 활동을 하고, 이웃종교인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온 정목 스님에게 기독교인 하벨 대통령이 했던 말이 종교 간 배타를 넘어 따스한 체온을 전해준다.

하벨 대통령은 자신은 기독교인이지만 마음으로는 불교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불교는 관용의 종교라 친근감이 간다고 하는가 하면 자신의 비서실장이 불교에 귀의하고 집무실에 불상 그림까지 걸어놓았지만 그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수채화처럼 잔잔한 이야기들은 이성적인 법문이라기보다는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해지는 온기이자 눈물이다 . 그 독서의 순례 속에서 미움은 녹고 사랑은 어느새 부쩍 자란다 . 이처럼 그림 같은 이야기 사이 사이에 언뜻언뜻 빛나는 보석 같은 글들이 마음을 환히 밝혀준다.

“어리석은 자의 현재는 언제나 과거에 끌려서 존재하고, 지혜로운 자의 현재는 과거를 뛰어넘어 지금 이 순간 스스로의 현실을 창조합니다. 과거가 현재의 근원이 아니라 현재가 과거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삶이란 과거가 모여 형성된 어떤 것이 아니라, 사실은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순간의 찰나입니다. 수많은 찰나와 수많은 현재가 끊임없이 바뀌어나가고 있을 뿐입니다.”

정목 스님. 사진 유나방송 제공

서울 성북구 삼선동 정각사에서 자리 잡은 지 40여년이 훨씬 넘어 머지않아 노승의 반열에 들어갈 법랍임에도 여전히 풋풋한 정목 스님의 법문이 다시 세간의 시간을 뛰어넘게 한다.

“승자는 패자보다 더 열심히 일하지만 시간에 여유가 있고, 패자는 승자보다 게으르지만 늘 바쁘다고 말합니다. 승자의 하루는 25시간이고, 패자의 하루는 23시간밖에 안 되며, 승자는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놀고 열심히 쉬지만, 패자는 허겁지겁 일하고 빈둥빈둥 놀고 흐지부지 쉰다고 합니다. 승자는 시간을 관리하며 살고 패자는 시간에 끌려가며 산다는 말입니다.”

정목 스님의 푸른 순례길을 따라가다 보면 분노의 마음은 새근새근 잠이 들고, 어느새 봄 햇살 같은 사랑이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된다.

“잠도 안 잘만큼 분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미워할 때 인생은 고통스럽습니다. 반면에 누군가를 사랑할 때 우리는 기쁨을 경험합니다. 고통을 선택할지 기쁨을 선택할지는 자신의 결정에 달려있지요.”

글 조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