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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福音 묵상

오늘 우리의 신앙은 혹시라도 진지한 성찰과 회심이 생략된 신앙,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이 배제된 값싼 신앙이 아닌지요?

사순 제4주간 토요일

(예레11.18-20.요한7.40-53)

<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오늘 우리의 신앙은 혹시라도 진지한 성찰과 회심이 생략된 신앙,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이 배제된 값싼 신앙이 아닌지요?

인류 역사 안에는 예수님의 이름을 빙자한 숱한 사이비 교주들이나 거짓 목자들이 많이 등장했고, 그로 인한 피해자들이 속출했습니다. 아직도 그 사악한 무리들은 약하고 선량한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피정 센터에서 사목하면서 피해자 부모님들을 가끔 만납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들이, 세상 사랑스러운 딸이 거기 들어간 지 삼 년, 오 년, 십 년입니다. 어떻게서든 빼내 보려고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백약이 무효입니다.

사이비 교주로부터 자녀를 한번 구해보겠다고 별의별 방법을 다 강구해보지만, 보편적인 우리 머리 꼭대기에 있는 그들을 이겨낼 방법이 없습니다. 이리저리 자녀를 따라 전국을 헤매다 보니 가정은 폐가망신이요 풍비박산입니다.

사이비 교주들과 그들의 추종자들의 사악한 계약 앞에 선량한 백성들을 속수무책으로 넘어집니다. 간당간당한 재산을 다 털어 갖다 바칩니다. 혈연까지 결연히 끊어가며 사악한 무리 속으로 깊숙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인생의 중차대한 결정 앞에 정확한 판단력이며 식별력입니다. 사실 종교라는 것, 별것 아닌 것처럼 여겨지지만, 우리네 인생에 종교는 큰 부분이요, 더 나아가서 삶의 전부입니다.

어떤 종교를 선택할 때, 중요한 기준이랄까 지침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신앙과 이성이 잘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진지한 성찰과 회심이 생략된 신앙,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이 배제된 값싼 신앙, 고통과 십자가는 철저하게 외면하면서 현세적 성공과 축복만을 청하는 싸구려 신앙, 우리가 목숨 걸고 반대해야 할 웃기는 신앙입니다.

,예수님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을 바로 보는 관점에 있어서 천차만별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사기꾼으로 바라봤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예언자 중에 한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자신을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게 할 메시아, 구세주 하느님으로 바라봤습니다. 우리네 인생 여정 안에서 누군가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어떤 관점에서 대상을 바라보는가?

예수님께서는 당대 거짓 예언자들이나 사이비 교주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완전 다른 존재이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즉각적으로 알아보기 위한 식별력이 필요합니다.

오늘 제 신앙을 성찰해봅니다. 자신의 동굴 안에 깊숙이 갇힌 나머지, 세상의 고통이나 슬픔, 눈물이나 아픔에는 단1의 측은지심도 없는 것은 아닌지요?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이라는 열매는 하나도 없이 그저 말로만, 결심으로만 끝나는 것은 아닌지 깊이 묵상해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