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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길(平和)

< 정신의 밥은 언제? >

-먹고 먹어도 또 먹는 밥 -

< 정신의 밥은 언제? >

우리나라 작품 중에 극한적인 배고픔이 묘사된 것으로 강경애, 천승세의 소설들이 얼른 기억나지만 가난했던 시절 우리 문학이나 영화는 자연히 배고픈 얘기가 주를 이루었다.

우리가 절대빈곤을 벗어났다고 말하는 것이 사실 최근이니 ‘밥’이라고 하는 것은 언제나 우리에게 절실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리말 표현에 ‘먹다’와 ‘밥’이 그리도 많은 것 아닐까?

잊어먹고, 까먹고, 마음먹고, 겁먹고, 써먹고, 부려먹고, 미역국 먹고, 꿀밤 한대 먹고, 축구하다 한 골 먹고, 별난 놈은 여자를 잘도 따먹고, 귀신 씨나락 까먹고... 한 방 먹어라 하고 때리면, 맞는 놈은 떡이 되고, 비지땀을 흘리며 일하고는 파김치가 되어 돌아온다. 오죽 배가 고프면 실밥, 톱밥, 대팻밥이 모두 밥으로 보이겠는가?

우리 몸 중심에 있는 '밥통'이란 것이 얼마나 참을성 없는 물건인가?

하루 세 번씩 우리를 닦달하고. 하루 이틀만 돌보지 않으면 체면, 위신, 자존심을 모두 위태롭게 만든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보면 밥통만큼 청렴 강직한 것도 없다. '포도청'이라는 별명의 '입구'에서는 그래도 맛을 따지고 어쩌고 하지만 '본부'에서는 그런 것을 가리는 법이 없다.

일단 밥통은 채워지면 이물질이 들어온 것이 아닌 한 느긋해지고 일정한 양 이상은 거절한다. 우리 몸은 그만하면 만족하도록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일단 배가 채워지고 난 후에 무엇을 바라는 것은 다 탐욕이다. 그래서 성인들은 밥 먹을 때 기도하라 했고 식탐(食貪)을 죄악으로 여기라 했다.

그런데 식탐뿐 아니라 다른 탐욕까지도 모두 밥통의 잘못으로 돌리는 수가 많다. 몇 억을 가질 목적으로 살인행위가 벌어지는 현상에 대해 “빈부의 차를 줄여야 한다”는 말은 별 설득력이 없다. 탐욕이 있는 한 빈부의 차를 줄여보아야 마찬가지다. 부자를 부러워하는 것도 부자라고 우월감을 갖는 것만큼 탐욕이다.

배가 고플 때 환장하는 것처럼 탐욕스러운 인간은 배는 불러도 그 어딘가가 고파 환장하는 사람들이다. 탐욕을 없애기 위해서는 '밥통'이 아닌, 우리 몸에 있는 또 하나의 '통' 속에 삼시 세 때 먹는 밥처럼 또 다른 '밥'을 매끼 적절한 양으로 꾸준히 부어 넣지 않으면 안된다. '정신의 양식'을.

밥을 먹어 몸을 다스리는 것처럼 정신의 양식을 밥처럼 먹는다면... 배가 불러 느긋한 것처럼, 정신이 배불러, 아니 ‘정신 불러’ 느긋하면 되는 것 아닐까?

동물들을 보면 삶의 지혜를 본능으로 갖고 태어나고 어미에게서 기본적인 것을 배운 다음 독립해서는 스스로 터득하는데 인류는 어쩌다 ‘밥통’ 외에 또 ‘머리통’이 따로 생겼는지 인류학의 설명을 들어야 하겠지만 머리통에 넣는 밥 문제에 나부터도 너무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간혹 생이지지(生而知之)하는 것 같은 사람들을 만나는 수도 있지만 보통 사람은 너도나도 교육이라는 것을 받는 이유가 따지고 보면 ‘머리통 밥’ 때문 아닌가?

그러나 국민의 교육책임자가 부총리 자리에 있고 교육열이 세계에서 선두를 달린다면서 대체 머리통에 무슨 밥을 넣었기에 나라꼴이 이 모양인가? 골치가 아파 이루 증상을 열거하기도 싫다. 이 나라의 증상이 ‘지방간’ 정도인가?

간단히 말해 머리통 밥을 잘못 먹은 것이다. 그럼 무엇을 먹어야 하나? 설법, 설교 같은 도그마가 있는 것은 각자의 뜻에 따르되 일상 먹는 것은 영양을 의식할 필요 없이 맛있어 자꾸 당기게 되는, 그러나 영양가 풍부한 것을 먹으면 된다.

의학, 영양학 전문인들이 좋다 하는 것을 믿고 먹듯이 수백 년, 수천 년 전부터 경험자들이 좋다고 말하는 것들, 시공을 넘어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것들, 먹어서 소화 안 돼 설사하거나, 비계 살이 끼는 소위 ‘지식’이라는 것말고 힘 안들이고 먹어도 모두 지혜가 되는 정신의 현미, 콩, 야채들, 여기서는 굳이 신토불이를 따지지 않아도 되는 것들 - 그것은 바로 세계의 고전이다.

하루에 밥 먹는 시간을 대략 세 시간 잡으면 정신의 양식도 매일 세 시간 정도는 먹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그 정도만 하고 십 수년에 걸치는 학교라는 지긋지긋한 악몽에서 청소년을 해방시켰으면...)

개인과 함께 나라의 증상도 정신의 밥으로 고칠 수 있다고 믿는다. 국가는 모든 형태의 ‘고급음식’을 육성하는데 집중적으로 세금을 써야한다. 없애지지 않는 퇴폐문화도 굳이 없애려고 애쓸 필요 없다.

퇴폐문화의 가치를 약하게 하려면 다른 쪽에 있는 고급 음식(문화)에 힘을 실으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고액과외, 청소년범죄부터 야비함의 극을 치닫는 정치풍토까지 밥으로 고칠 수가 있다. 그러나 위정자들이 언제 이런 말에 귀를 기울일지...

- 글쓴이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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