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은 너무 짧다
“3년은 너무 길다.” 지난 총선 판도를 바꾼 조국혁신당의 선거구호다. 너무 길어 보이는 3년은 윤석열 대통령의 남은 임기다. 이 구호 덕분에 조국혁신당은 창당 두 달도 못 되어 12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했고, 대통령 탄핵과 개헌저지선에 겨우 8석이 모자란 압도적 여소야대 국회가 출범하게 되었다.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가 대통령 심판 선거로 치러진 탓이다.
이제 국회와의 협치를 전제로 하는 한국형 대통령제의 본질상 ‘분점정부’가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주권자 국민의 심판을 받았음이 분명한 윤 대통령은 심판의 내용에 있어 남다른 해석을 내놓은 듯하다. 국정기조는 옳은데 국민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무지한 국민을 깨우치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단다.
대통령의 참모들을 총선에서 떨어진 심복들로 다시 채운 것도 모자라 민심을 청취하겠다며 민정수석직을 부활해서 검찰의 인사기획통을 모셨다. 이후 전격 단행한 검찰의 인사는 ‘친윤’ 친위대를 전면에 내세우고 수사에도 성역이 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었다.
‘묻지마지지’를 보내던 이른바 보수언론마저도 비판하는 안하무인의 불통 기조가 계속되고 있다. 2년이나 걸린 야당대표와의 회담이나 기자회견, 선거개입 논란을 빚다 중단된 민생토론회의 속개도 ‘무늬만 소통’인 ‘마이 웨이’의 복사판이다. 그 결과 대통령에 대한 국정지지도는 비슷한 시기 역대 최저치에 머무르고 있다.
헌법이 명령하는 협치와는 거리가 먼 윤 대통령의 불통행보는 결국 주권자 국민들의 불행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변할 리 없는 한 사람만을 어르고 달래느라 허송세월할 수만은 없다.
기후위기와 AI시대의 도래와 같은 전지구적 전환과 미·중 갈등, 우크라이나 전쟁 등 급변하는 국제정세나 단절된 남북관계는 물론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고현상으로 상징되는 민생경제의 위기는 우리에게 최선만을 고집할 수 있는 여유를 허용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주권자 뜻에 따르도록 설득하는 한편 이제 국민끼리라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헌법은 최선만이 아니라 차선의 길도 열어두고 있다. 절대왕정의 독재체제를 민주공화정의 협치체제로 전환시킨 인류의 지혜는 의회민주주의에 있다. 근대민주국가로의 체제전환은 의회중심의 민주화로 진행되어왔다. 대통령제라는 정부형태를 채택하는 경우에도 의회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일 수 없다.
흔히들 대통령제를 대통령‘중심’제로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행정권을 입법권자의 신임관계로부터 분리하고 행정권 행사의 정치적 기초를 국민이 직선하는 대통령에 두는 것일 뿐이지 의회의 입법으로부터 행정권을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법치주의에 따라 민주공화제에서 행정권이란 의회가 제정한 법률을 집행하는 2차적 권력이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으며, 행정권은 오로지 법률의 한계 범위 안에서 재량을 가질 뿐이다.
한마디로 민주공화제를 표방하는 법치국가에서 국정의 중심은 어떤 정부형태이건 의회일 수밖에 없다. 행정권의 수반인 대통령이 협치를 외면하는 반헌법적 국정기조를 바꾸지 않는다면 국정의 중심이어야 할 국회만이라도 대전환기에 걸맞게 국정운영체계의 개혁을 주도해야 한다.
우리에겐 민주화 이후에도 반복되는 민주적 법치의 위기와 비생산적 국가운영체계를 개혁해야 할 제2차 민주화의 과제가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국회·정부·사법 개혁의 전방위적 과제 가운데 국회 주도의 국정운영을 위해 당장 두 가지 대안을 검토해볼 수 있다. 우선 시민참여 공론과정을 제도화해야 한다. 이미 선거제와 연금제의 개혁에 대해 부분적으로 시행되었으나 제대로 결실을 맺지 못한 바 있지만 시민참여 공론과정의 확대는 여야 극한대립구도의 한계를 극복하고 주권자의 공론을 정치 동력으로 삼아 시급한 국정현안을 돌파할 수 있는 제3의 길이 될 수 있다.
한편 야당이 ‘그림자 내각’을 구성하여 행정각부별 중요정책과제에 대하여 다변화된 정책논의를 일상화한다면 대통령과 야당 대표로 집중화된 집권적 대결구도를 완화하여 다양한 민생과제들을 진영논리가 아니라 실사구시적 기준으로 현실화할 수 있는 정치환경이 마련될 수 있다.
대통령의 불통행보로 남은 3년이 허송세월이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있다. 그러나 이 위기를 국회 주도로 국정난맥의 물꼬를 틀 수 있는 국정개혁의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제2의 민주화를 위한 국정개혁의 관점에서 앞으로 3년은 길기는커녕 오히려 너무 짧을 수도 있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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