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박정훈 대령, 김계환 사령관, 임성근 사단장, 이종섭 국방장관, 유재은 법무관리관,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 윤석열 대통령. 김재욱 화백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군인권보호국이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의 긴급구제 안건을 조사한 뒤 내놓은 ‘사건조사결과보고’에는 ‘채 상병 순직사건’ 외압 의혹의 뼈대인 ①이첩 보류 ②혐의 미적시 요구 ③기록 회수 등에 대한 국방부와 해병대 사령관 논리의 문제점이 조목조목 담겨 있다.
보고서는 “해병대 사령관의 이첩 보류 지시는 적법 절차의 원칙에 위배되는 행위”라고 판단하고 박 대령이 “일련의 과정을 수사에 대한 부당한 외압으로 느꼈을 만한 정황이 상당”하여 항명죄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장관·사령관 구체적 수사 지휘권 없어”
보고서는 외압 의혹의 출발점인 ‘이첩 보류 명령’에 대해 권한 없는 명령이라고 결론 냈다.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과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 채 상병 순직사건 수사에 대해 구체적인 지휘 권한이 없다는 뜻이다.
군사경찰직무법은 소속 부대의 장(이 사건에선 김계환 사령관)이 군사경찰을 지휘·감독할 권한을 갖는다고 규정하지만 “구체적 사건에 대한 지휘 권한까지 포함한다고 해석할 수는 없다”는 게 보고서의 결론이다.
보고서는 “(개정 군사법원법은) 2022년 7월1일부터 ‘군인 등의 사망에 이르게 된 원인이 되는 범죄’의 재판 관할을 민간법원으로 하고 있다”며 “장성급 지휘관의 지휘 권한 악용 및 은폐 시도를 차단하고 수사기관의 전문성과 독립성 확보(하려는 취지)”라고 밝혔다. 이어 지휘관의 지휘 감독 권한은 “인권침해 가능성에 대한 감독자로서의 역할이 주어진 것으로 제한적 해석”을 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군사경찰이 민간경찰에 사건을 이첩할 때 그 주체는 ‘군사경찰’”이라며 “이 사건에 비춰보면, 이첩 책임자는 직접적으로 해병대수사단 제1광역수사대장이고 넓게 보았을 때 총지휘를 맡고 있던 박정훈 전 해병대수사단장”이라고 명확히 했다.
보고서는 “해병대 사령관에게 이첩 보류를 지시할 권한이 있다고 볼 수 없고, ‘채 상병 순직사건이 장관에게 보고됐기 때문에 장관이 김 사령관에게 이첩 보류 지시를 할 권한이 생겼다’는 국방부 주장도 인정하기 어렵다”고 못 박았다.
6건 중 5건 혐의 적시 이첩…“회수는 경찰 수사 방해행위”
보고서는 ‘혐의 미적시 요구’에 대해서도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은 ‘(사건을 넘기지 말라는 게 아니라) 혐의를 기재하지 말고 사건기록만 넘기라고 한 것’이라는 취지로 해명하고 있다.
개정 군사법원법 시행 이후 6건의 군인 등 사망사건을 경찰로 이첩했는데 이 중 5건은 범죄혐의점을 기재했고, 1건만 군 수사기관이 경찰과 사전 협의를 거친 뒤 혐의가 기재되지 않았다. 보고서는 이런 점을 지적하며 “비단 이 사건에서만 (혐의를 기재하게 되어 있는) 해당 서식에 의하지 않고 경찰과 아무런 사전 협의도 없는 상태에서 사건기록만 송부해야 할 타당한 이유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특히 보고서는 지난해 8월2일 경북경찰청에 넘어간 사건 기록을 국방부 검찰단이 되가져온 행위를 “경찰 기망 행위”이자 “경찰 수사착수 지연 행위”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이첩 보류에 이어 회수까지 한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는 점도 강조했다.
기록 회수에 대해 국방부 검찰단은 ‘박 대령 항명 혐의의 증거 자료라서 경찰로부터 임의제출 받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보고서는 “임의제출로 인정하기 어렵다”며 검찰단 논리를 반박했다. 보고서는 “임의제출이라면 임의제출 동의서, 목록 교부 등의 절차가 있어야 하는데 (없다)”고 밝혔다.
‘임의성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했다. 보고서는 “사건기록 인수인계증은 임의제출동의서로 갈음할 수 없다”며 “국방부 검찰단이 경찰에 ‘이첩 과정에 문제가 있다’며 기록 회수를 요청했는데 이는 (임의제출 형식이면서, 그게 아니라고 설명한 셈이라) 기망 행위다.
임의성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문제되는 것은 수사 개시의 지연이 국방부 검찰단의 회수 행위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라며 기록 회수의 문제점을 강조했다.
‘보이지 않는 손’ 존재에 대한 우려도 담아
보고서는 이 사건 전반에 흐르는 국방부 윗선의 외압 의혹에 대해서도 간접적으로 우려를 표했다. 보고서는 “경찰은 이 사건 발생 초기부터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며 조속한 사건 인계일자를 (군사경찰과) 협의해왔다”며 “(기록 회수 당일인) 8월2일 (기존 태도와 달리) 이미 이첩된 사건기록을 단지 ‘기관 간 협의’라는 명목하에 돌려주고, 이후 국방부 조사본부의 재검토 결과에 따른 이첩이 있기까지 아무런 수사를 개시하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국방부 입장 변경과 관련해서도 “7월31일 국방부 입장이 급변경된 사정과 그에 대한 국방부의 현재까지의 해명이 쉽게 납득 안 돼 그 동기가 의심되나 이와 관련한 고발이 이뤄져 수사 중인 점 등을 감안해 더 이상 판단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국방부와 경찰의 태도가 달라졌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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