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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숨 쉬니 感謝

종교인 16명 ‘대운하 반대’ 100일 순례

종교인 16명 ‘대운하 반대’ 100일 순례

“대운하가 대운구 행렬 될까 두렵다” 침묵의 발길

‘생명의 물길’ 따라 천막노숙…‘탐욕과 폭력’ 참회 차가운 강바람이 살 속을 파고들었다. 인간의 탐욕으로 뜨거워진 이 땅의 열기를 식히려는 듯이. 한반도 대운하가 계획된 강줄기를 따라 100일 동안 천막을 치고 자는 노숙을 하며 걷기로 한 종교인들을 비롯한 16명의 고행은 12일 오후 1시 강바람 몰아치는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애기봉에서 200여명의 환송 속에서 시작됐다.

한강과 임진강, 예성강물이 하나 되는 만남의 강이자 남과 북을 갈라놓은 이산의 강이었다. 1980년대까지 재두루미 등 겨울 철새들의 군무로 아름다웠던 정경이 사라져버린 삭막한 겨울 강에서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은 각 종교별로 나와 기도했다. 이들의 기도는 경부대운하를 추진하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도 한나라당도 겨냥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을 향한 참회록이었다.

가톨릭 김규봉 신부(창조보전 전국모임 사무처장)는 “하느님 당신의 창조물을 사랑하는 것이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며,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것인데도 그보다는 경제와 돈이라는 우상을 섬겨왔다”고 고백했고,

개신교를 대표해 기도한 성공회 최상석 신부는 “하느님의 유산인 산과 강이 이토록 찢기게 한데 대해 그리스도인으로서 참회한다”고 말했다. 지관 스님(김포불교환경연대 대표)도 “새벽마다 부처님전에 차공양을 올리면서도 이 강물이야말로 감로수임을 망각했다”고 고백했다.

이들의 장도를 배웅하러 온 김지하 시인은 “며칠 전 타버린 숭례문은 ‘예’를 숭상하라는 것인데, 우리가 자연에 대한 예의를 잃어버릴 때 결국은 우리 자신도 더 이상 숨쉴 수 없게 된다”면서 “인간의 탐욕으로 인한 개발과 소비로 인한 지구 온난화로 지구에 10년, 아니 7년 내 치명적 바이러스가 몰려와 인류가 큰 위기에 처한다는 게 미래학자들의 예언”이라고 각성을 촉구했다.

이번 순례단장인 이필완 목사가 “한반도 대운하가 한반도 대운구 행렬이 되지 않을지 두렵기만 하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출발을 선언하자 침묵의 순례가 시작됐다.

이번 순례는 지난 2003년 새만금 갯벌을 살리기 위해 전북 부안에서 서울까지 두발 걷고 한번씩 큰절을 하고와 전세계인들을 감동시켰던 삼보일배에 비견할 만하다. 불교 스님과 개신교 목사, 가톨릭과 성공회 신부, 원불교 교무 등 다양한 종교인들이 손을 맞잡고 함께 걷는 모습은 세계에서 유일한 다종교 국가인 우리나라가 아니면 볼 수 없는 감동적인 모습이다.

이들은 각 종교의 방식대로 기도하지만, 순례길에선 그리스도인이나 불자라기보다는 ‘생명’에 귀의한 하나의 종교인들이다. 이번에도 전북 부안에서 서울까지 새만금 갯벌을 살리기 위해 삼보일배를 했던 수경 스님(불교환경연대 대표)이 다시 나섰고, 삼보일배 때 수경 스님과 형제 이상의 동지애를 나누던 문규현 신부는 모든 여정을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매주 하루씩 참여하기로 했다.

지리산 실상사에서 힘을 모아 불교계 뿐 아니라 우리나라 생명운동에 근본적인 변화 바람을 몰고왔다가 각자의 삶으로 돌아갔던 수경-도법-연관 스님 3인방도 다시 100일을 함께 하게 됐다.

5년째 전국을 걷고 있는 도법 스님(인드라망생명공동체 대표)은 생명평화탁발순례 여정을 이곳으로 돌렸다. 양재성 목사(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와 김민해 목사, 김경일 성공회 신부, 최종수 신부 등도 일찌기 지리산 일대에서 종교를 넘어서 이들 스님들과 함께 생명운동을 함께 했던 이들이다.

차흥도 목사(감리교 농촌선교훈련원 원장), 홍현두 교무(원불교 천지보은회 홍보실장) 등도 각 종교의 대표적인 생명운동가들이다. 불교계 뿐만 아니라 시민단체와 지식인 사회에서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온 도법, 수경 스님을 비롯한 이들의 영향력에 비춰볼 때 이번 순례가 물질주의에 패퇴한 종교인들과 지식인 사회의 심연에 지진을 불러오면서 우리 사회의 가치관 변화에 큰 파장을 가져올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들의 순례 방식도 기존의 ‘운동’들과는 사뭇 다르다. 이들은 강가에 천막을 치고 자면서 강을 따라 하루에 15㎞ 가량을 걷는다. 침묵하며 기도의 마음으로. 상대를 향한 투쟁이 아니라 자신을 성찰하고 생명들의 마음에 공명하기 위함이다.

한반도 대운하를 추진하는 이명박 당선인이나 새정권을 향한 투쟁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자연과 인간과 후손들까지 내몰라라 하는 ‘우리 안의 탐욕과 폭력’에 성찰의 여정으로 이끄는 것이다. 조현 한겨레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동영상/ 박수진 PD jjinpd@hani.co.kr

“스님, 어젯밤 내 방은 너무 뜨거워서 등짝 델 뻔했소”“불을 질러라, 불 질러, 갑자기 (열 받아) 뜨거워지네” [취재 후기] 혹한의 밤 걱정에 전화 드렸더니… 어제밤은 너무도 추웠습니다. 종로에서 저녁을 먹고 밤 9시쯤 차를 기다리는데, 너무도 추워서 5분이 50분 같더군요. 그런데 엄살을 떨 수가 없었습니다. 순례단은 그 시간에 들판 한 가운데 천막을 치고 맨바닥에 누워있었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걱정이 되어서 양재성 목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양재성 목사는 기독교환경연대 사무총장입니다. 내 벗이었던 채희동 목사와 감신대 동창이자 가장 절친한 친구이지요. 애초 기독교환경연대 사무총장으로 내정되었던 채희동 목사가 부임을 며칠 앞두고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바람에 친구를 대신해 지리산에서 서울로 끌려와 기독교환경운동을 이끌고 있는 제 벗이기도 하지요.

그는 “아무래도 밤에 동사자가 나오지 않을지 모르겠다”면서 웃더군요. 그러나 전화를 통해서도 그의 꽁꽁 얼어버린 몸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아침이 되어서 다시 수경 스님(불교환경연대 대표·서울 화계사 주지)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스님은 오랫동안 선방에 다녔던 선승이라 격식에 매이지 않는 분이지요. 그래서 저 또한 그 분에겐 그렇게 됩니다.

“스님, 어제 밤 내 방이 너무나 뜨거워서 등짝 델 뻔했소.”“불을 질러라. 불을 질러. 갑자기 (열 받아) 뜨거워지네.”“어제 밤부터 열을 좀 내시지 그러셨어요. 목사님하고 신부님 쫌 꼭 껴안고 주무시지 그러셨어요.”“당신처럼 평소부터 남 안고 자던 사람이나 그러지. 우린 평소에 연습이 안돼 있어서 남 안고 자지를 못해.” 꽁꽁 언 상태로 다시 걷고 있던 스님이었지만, 전화를 통해 들려온 호탕한 웃음소리는 세상의 냉기를 달구고도 남을 것 같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따뜻한 방 안에서도 “못살겠다”고 “나만 좀 잘 살아보겠다”고 투덜대고 있을 때, 아무것도 욕심낼 것 없는 수도자들이 무엇 때문에 이 추위에 강바람을 자처하며 강가로 들판으로 나섰을까요. 수경 스님과 양재성 목사는 ‘순례를 떠나면서’ 글을 썼습니다. 거기엔 관념이 아니라 온 몸과 마음으로 자연의 모든 생명, 즉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어떤 아름다운 글도 진실만큼 아름다울 수는 없습니다.

수경 스님과 양재성 목사의 글을 읽으며 설사 직접 그들을 따라 걷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마음으로나마 생명의 순례길을 나서볼까요. 조 현 기자 cho@hani.co.kr 하느님이 보기 좋다 하신걸 왜 사람이 조작하려 하십니까 [100일 순례를 떠나며] 수경 스님 삼라만상 두두물물은 자연의 이치에 따라 여여(如如)합니다. 자연의 한 부분인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께서도 당연히 그러하시리라 믿습니다.

앞으로도 그러하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몇 마디 고언을 할까 합니다. 이것도 다 시절 인연이겠지요. 사실 저는 경제나 정치에 대해 잘 모릅니다. 다만 지금 논란이 되는 '한반도 대운하 구상’을 보노라면 생각만으로도 식은땀이 흐릅니다. 국토의 근간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어 놓을 엄청난 일을 오로지 '경제' 논리만으로 추진하려는 듯해서입니다.

임기 중 경기 부양 효과라는 당장의 이익에 급급한 나머지, 먼 미래의 후손들도 온전한 자연환경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이 닿지 않는 것 같습니다. 대운하 건설의 최대 명분인 '경제성'조차도 다수의 전문가들이 회의적인 의견을 내 놓고 있습니다. 이 당선인께서는 이들 전문가들이 합리적 논거를 들어 우려를 나타내는 것에 대해서도 '반대를 위한 반대'로 여기는 듯하여 안타깝습니다.

저는 불문에 귀의한 출가 수행자로서 이 당선인의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존중합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진리가 말 그대로 참된 이치라면 불교에서 말하는 진리와도 부합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당선인께서 진정한 기독교인이라면 '지금도 자연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교회의 장로이시기도 한 이 당선인께서는 어찌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고 하신 이 세상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일을 벌이려 하십니까. 기독교의 입장에서 대운하 건설 문제를 바라보면 '창조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은 물론 '신에 대한 도전'일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결코 당신의 피조물이 처참하게 파헤쳐지는 것을 원치 않으실 것입니다. 이미 대운하 건설 예정지의 땅값이 들썩이고 있다고 합니다. 앞으로 어쩌면 이 나라의 국민들은 빈부 양극화에 더하여, 대운하로 경제적 이익을 볼 일부와 그것과 무관한 다수로 양극화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성숙한 모습으로 안착해야 할 한국의 자본주의가 노골적 천민화의 단계로 후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듭니다. 이 당선인께서 누구보다 앞장서 수호해야 할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할지도 모릅니다. 대통령의 직무는 경제뿐만이 아니라 사회 문화의 전반을 다루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특히 환경 문제는 전 세계의 지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있는 중요한 현안입니다. 개발과 반개발이라는 이항 대립의 차원을 넘어선 지 오래입니다. 환경 보호는 이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도, 하면 좋을 일이 아니라 꼭 해야 할 일이 되었습니다. 이 당선인께서도 그것을 모를 리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 당선인께서는 당장의 성과에 강박적으로 집착하시는지요. 저간의 사정이야 어떻든 다수의 국민이 이 당선인을 대통령으로 선택한 것은 이 당선인의 다양한 경험과 능력을 인정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당선인 자신도 한반도 비핵화, 교육, 청년 실업, 복지 문제 등 한국 사회의 미래가 걸린 문제들을 멋지게 해결하고 싶을 것입니다. 하고 싶은 일도, 꼭 해야 할 일도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대운하 문제로 자승자박하시는지요. 산에 사는 저 같은 사람이 보기에도 답답할 노릇입니다. 외람된 질문이지만 대운하 예정지의 현장에 가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물론 그러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건설회사 CEO의 눈이 아니라, 생명의 눈으로 한강과 낙동강을 비롯한 우리네 생명의 젖줄을 육친적 연대감으로 바라보신 적이 있는지요?

그곳을 흐르는 건 물만이 아닙니다. 역사와 문화, 신화와 전설이 흐르고, 온갖 생명이 흐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대운하는 경제 차원을 훌쩍 넘어서는 보다 근본적인 생명의 문제입니다. 이 당선인께서 의욕적으로 추진해 성과를 보인 청계천 복원사업은 (물론 다양한 비판도 있지만 이 편지에서는 논외로 하는 것이 순리이듯) 순리이자 순천(順天)이었습니다.

그러나 대운하 구상은 한반도의 근간인 백두대간을 두 동강 내고 생명의 젖줄을 절체절명의 궁지로 빠뜨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이 땅을 사무치게 사랑한 고산자 김정호가 대동여지도의 발문에 밝혀 놓은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즉 '산은 물을 건너지 않고 물은 산을 넘지 않는다'고 한 산과 강의 존재 방식은, 국토의 체(體)인 산(山)과 국토의 용(用)인 강(江)이, 인간을 비롯한 온갖 생명을 거두는 원리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백두대간은 이미 삼팔선이라는 비극적인 철조망으로 단절된 지 반세기가 넘었습니다. 여기에다 대운하의 거대한 물길이 백두대간의 몸통을 자른다면 마침내 백두산부터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유장한 민족정기의 근원은 세 동강이 나고 말겠지요.

이는 산천 조화의 원리를 훼손하는 일이자, 아무 죄도 없는 수많은 생명체를 죽음으로 내모는, 차마 못할 짓이라 생각합니다. 아무런 권리 주장도 할 수 없는 미래 세대들로서는 조상들이 뿌린 인(因) 때문에 엄청난 재앙의 과(果)를 받아야 할 실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생각만 해도 두렵고 무섭습니다.

백두대간에 되돌릴 수 없는 상처를 입히고, 유사 이래 독자적 생태계를 유지해 왔던 낙동강과 한강의 경계를 무너뜨리면, 이 땅의 생명질서는 회복 불능의 교란 상태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라 자연의 질서가 수없이 많은 사례로 증명해 보인 바를 말씀드리는 것일 뿐입니다.

이 땅의 산하는 대통령의 것도 아니요, 몇몇 학자들이나 경제인들만의 것도 아니요, 여당이나 한 정권만의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우리 국민 모두의 것인 동시에 이미 돌아가신 분들이나 미래 세대들의 살붙이입니다. 설사 경제성이 엄청나다고 하더라도, 생명의 최후 보루를 버리고 눈앞의 신기루를 좇아 끝끝내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는 것이 마땅한 일인지요?

검증되지도 않은 대운하의 경제적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한 번 파헤쳐지면 도저히 돌이킬 수 없는 금수강산을 임기 내 실적의 제물로 삼아야겠는지요? 아니, 그 정도로 대한민국의 경제가 심각한지를 간곡히 묻고 싶습니다.

저는 7년 전쯤에 낙동강 1300리 길을 따라 27일 동안 걸은 적이 있습니다. 다행히도 이 땅의 젖줄답게, 압축 성장의 결과로 심각하게 오염되었던 강은 참으로 아름답고 수려한 생명의 강으로 거듭나고 있었습니다. 식수 위기를 불러왔던 낙동강 페놀 사태 이후 수십 조 원을 들인 노력 끝에 간신히 회생의 실마리를 찾은 것입니다.

이러한 마당에 다시 이 모든 것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데 또 수십조원의 혈세를 쏟아 붓는다면 도대체 새 정부의 '경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몇몇 학자들의 '19세기적인 발상'에 한반도 전체의 명운을 걸어야 하겠습니까? 이제 곧 이 당선인께서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에 취임할 것입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은 지지자들만의 대통령이 아니라 반대자들에게도 대통령입니다. 그야말로 통 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다양한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십시오. 경청까지는 아니어도 좋으니, 며칠 전 '대운하는 재앙'이라는 서울대 교수 80여 명의 토론회와 정파적 이권이나 사심 없이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양심적인 목소리도 귀에 담으십시오.

그러다 보면 분명히 '길'이 보일 것입니다. 국토의 운명을 놓고 단기적인 경기 부양책이나 총선 전략으로 사용하거나, 순박한 내륙 강안(江岸)의 사람들이나, 이미 땅을 사놓은 이들에게 투기 심리나 허황된 꿈을 부풀리며 민의를 호도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상위 5개 건설사를 내세워 '민자'로 포장을 해서도 안 됩니다.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다른 이익을 얻기 위해 달려드는 대기업들에게 한반도의 운명을 맡긴다는 것은 극히 위험하고도 치졸한 국정 운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실익이 있다 하더라도 강이라는 항구적 공공재를 기업의 사적 이익에 종속시키는 것은 경제 정의는 물론 민주주의를 욕되게 하는 일입니다.

간절히 바라건대, 제발 대운하 구상만은 거두어 주시기를 정중히 요청합니다. 행여 그 구상이 정말 국가의 명운이 걸린 일이라면 미리 시간을 정하지 말고 치밀하고도 투명한 검토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미래 세대들도 승복할 수 있는. '좋은 대통령'은 갈등을 부추겨 정치적 동력을 얻는 특정 정치 집단의 리더가 아니라 국민들의 아픈 곳을 어루만지고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지도자일 것입니다.

수십조원에 이르는 혈세를 뿌려 엄청난 재앙을 불러들일지도 모를 일을 추진한다면, 이는 '실패를 위한 실패'가 될 것이며 세계 최대의 반경제, 반생명, 반화합이라는 천박한 자본주의의 역사적 증거가 될 것입니다. 저는 두렵고도 무섭습니다. 대운하가 몰고 올 국토 파괴가 두렵고, 국민적 불복종 운동 등 끝없는 갈등과 국론 분열의 소용돌이가 두렵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실행된다고 하더라도 이는 대운하가 아니라 죽음의 장례 행렬이 누대에 걸쳐 끝없이 흐를 대운구(大運柩)가 될 것만 같아 무섭습니다. 이 땅의 산과 강은 생명의 요람이자 교회요, 성당이자 법당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2월12일부터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할지도 모를 생명의 현장으로 길을 나섭니다. 여러 종교계의 어르신들과 함께 순례의 발걸음으로 1백여 일 동안 생명의 근원인 한강과 낙동강, 영산강과 금강을 모실 것입니다. 그 품에 안긴 온갖 생명들과 교감을 나눌 것입니다.

살얼음이 낀 강변에 천막을 치고 밤새 떨지도 모르겠지만, 인간만의 욕망 때문에 사라져버릴지도 모를 온갖 생명체들에게 안부를 물으며 참회의 기도를 올릴 것입니다. " 한마음이 청정하면 일체 중생의 마음이 청정하고, 한 몸이 청정하면 모든 중생의 몸이 청정하고, 한 국토가 청정하면 일체 국토가 청정하다”고 했습니다. 저 또한 조금이라도 더 청정해질 때까지 참회하며 눈 밝은 이들의 뒤를 따를 것입니다.

혹 결례가 있었다면 아직 수행이 부족한 탓입니다. 더 정진해야겠지요. 부디 이 당선인께서도 더욱 신앙심을 깊이 하시고 길이 후손들에게 칭송받는 대통령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바쁘시겠지만 행여 시간이 허락된다면 생명의 강을 모시는 순례의 길 위에서 허심탄회하게 만나 뵐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수경 스님(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 우리는 잠시 이 땅에 머물다 갈 뿐, 잃어버린 길을 찾아서 [100일 순례를 떠나며] 양재성 목사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라. 그 피조 세계 전체와 그 안에 있는 모든 모래알들을 사랑하라. 동물들을 사랑하고 식물들을 사랑하며 모든 것을 사랑하라. 당신이 모든 것을 사랑하면, 당신은 모든 것 속의 하나님의 신비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피오도르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중에서) 환경재앙으로 지구 종말이 올 수도 있다는 국제간 기후조정위원회(IPCC)의 발표는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무엇이 소중한 지를 일깨워 주는 하나님의 메시지다.

실제 지구 생태계 문제는 지구 생존의 문제가 되었고 인류가 해결해야 할 최대 핵심과제가 되었다. 숲의 상실과 사막화, 공해로 인한 각종 환경오염, 지구온난화로 인한 생물의 대멸종, 인구증가와 경제개발로 인한 지구생태계 파괴는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깨뜨려 지구재앙을 초래하고 있다. 그 지구재앙의 주범은 인간이며, 인간의 탐욕이다.

그러기에 환경문제는 인간의 문제이며 인간의 마음을 정화시키지 않으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인간 욕망에 대한 절제 없이는 생태계 파괴는 지속될 것이며 지구재앙은 현실로 닥쳐올 것이다. 성서는 인간을 나그네, 순례자로 그리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를 떠나 40년이나 광야를 걸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간다.

믿음의 선조인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자 안정된 땅을 버리고 낯선 땅으로 길을 떠난다. 이 것이 인류가 하나님과 깊이 만나게 되는 동기가 되었다. 그렇다. 인간은 원래 길 위의 존재이다. 길을 걷는 존재이다. 여기에 신비가 있다. 인간이 어디에 정착하면서부터 소유하기 시작하였고 탐욕에 빠지게 되었다. 우리는 길을 걸을 때만이 생태적 삶을 살 수 있다. 순례는 적게 소유하고 적게 쓰고 그렇게 함으로써 지구 생태계에 가장 적게 부담을 주는 길이다.

우리는 나그네요 순례자이다. 우리는 잠시 이 땅에 머물다 갈 뿐이다. 영원을 향해 걸어가는 순례자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이 순례자라는 자각이다. 한 순간도 자신이 순례자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순례자의 이상은 현실에서의 안일과 행복이 아니다. 진리와의 합일, 하나님의 그 영원하신 품이다. 순례란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길을 떠나는 것이다. 그 길 떠남이 인간의 본연의 자리이다.

우리는 그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순례를 시작한다. 또한 모든 인류가 그 길을 찾기를 소망하면서 길을 떠난다. 이 땅은 누구의 것인가?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은 누구의 것이며 삼천리금수강산은 누구의 것인가? 이 땅은 대통령의 것이 아니다. 물론 땅을 소유하고 있는 소유권자의 것도 아니며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의 것도 아니다. 이 땅은 피조세계를 지으신 하나님의 것이며 우리 후손들의 것이다.

이 땅은 우리 후손들이 대를 이어 살아야 할 생명의 터전이며 이 강은 생명의 젖줄이다. 그러기에 이 땅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인류는 강에 기대어 문명을 만들었고 강을 끼고 삶을 살아왔다. 그러기에 강은 인류의 어머니이며 생명의 젖줄이다. 성경의 첫 대문인 창세기도 동산엔 네 개의 강이 흘러 생명을 먹였다고 증언한다. 강은 흐름으로 주변 생명체들을 먹이고 살렸던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산이 수려하고 물이 맑아 강은 식수원이다. 물의 가장 소중한 가치는 식수이다. 식수원에 배를 띄운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망측한 일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식수원에 운하를 만든 나라는 없다. 우리는 지난 50여년을 경제개발이란 미명하에 강산을 다 파괴하였다. 그 결과 물질의 풍요는 얻었지만 생태계가 파괴되고 공해물질의 범람으로 금수강산은 병들어 신음하고 있다.

또한 인간이 살아가는 데 수단인 경제가치가 본질인 생명가치를 앞질러 정신문명의 퇴보와 천박한 물질문명을 양산하였다. 시대적 가치 체계의 변화 없이는 인류의 근본적인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우리는 경제 가치를 수단으로 놓고 생명을 담은 생태가치를 우선순위로 하는 새로운 가치체계를 세워야 한다. 이제 생태가치를 부수고 깨뜨리는 것은 반인륜적 행위이며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도전하는 신성모독행위이며 국민을 무시하고 후손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는 오만불손한 작태임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민주 공화국이며 모든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우리나라의 주인이 누구인가? 국민이다. 이명박 당선인은 향후 5년 동안 국민의 큰 심부름꾼일 뿐이다. 국민의 의견을 여쭈어 그 뜻을 겸허히 받들어 자자손손이 살아갈 터전을 잘 지키고 가꾸어야 한다. 우리는 생명, 생태가치가 이 시대의 중심 가치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생명의 근원인 강을 새롭게 인식하고 강을 모시기 위해 길을 나선다. 인류가 시작되기 이전부터 생명을 키워온 강, 생명의 어머니인 강을 모시고자 한다. 생태가치가 이 시대의 중심 가치로 세워지길 바라며 순례에 오른다. 우리는 100여 일을 걸을 것이다. 긴 장정이며 긴 시간이다. 걸으며 기도할 것이다. 지난 세월 생태계에 고통을 주었던 삶을 참회할 것이다.

더 이상 개발 지상주의에 사로잡혀 지구 생태계가 망하는 것엔 무심한 사람들의 마음이 깨어나도록 기도할 것이다. 분열과 갈등을 넘어 생명세상을 열자고 호소할 것이다. 우리는 걸으며 다양한 생명체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강은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 많은 생명체들이 없이는 인류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느낄 것이다. 우리는 한강, 남한강, 낙동강, 영산강, 금강을 만날 것이다.

우리는 두루미, 기러기, 청둥오리, 물오리, 까치, 박새 등 수다한 철새를 만날 것이다. 또한 송사리, 피라미, 모래무지, 붕어, 물방개, 소금쟁이를 만날 것이다. 그리고 갈대, 나무, 들꽃, 드넓은 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그 생명들이 우리를 살리고 있었음을 확인하고는 뜨거운 마음으로 껴안고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생명들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이 그 작은 피조물을 사랑하는 길과 통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또한 그 피조물 뒤에서 환하게 웃고 계시는 하나님을 뵙게 될 것이다. 우리는 다만 이 순례가 인류가 직면한 가장 거대한 문제인 생태계 문제를 지혜롭게 풀어가는 단초가 되길 빌 뿐이다.

우리 선조들은 자연의 질서를 거슬려서는 큰 일 나는 것으로 알고 자연에 겸허했다. 아무리 작은 생명이라도 함부로 대하지 않았고 순환의 삶을 살았다. 쓰레기를 만들지 않았고 밥은 똥이 되고 똥은 밥이 되는 삶을 이어왔다. 이제 잃어버렸던 길을 다시 찾아 걸어야 한다. 그 길을 걷는 것만이 우리가 살 길이며 인류를 구원하는 길이다. 길은 처음 그 길을 걸은 사람들이 있어 생긴 것이다. 우리는 우리 선조들이 걸었던 생태가치로 이어진 생명의 길, 생명평화의 길을 걷고자 한다.

이 길만이 인류가 살 수 있는 길이며 지구 생태계를 구할 수 있는 길이다. 지구온난화로 히말라야의 만년설이 녹으면 30억 명의 식수가 문제가 된다고 한다. 만년설이 조금씩 녹아 강을 따라 흘러 그 강에서 30억 명이 식수를 얻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구온난화로 일순간에 녹아내림으로 홍수피해는 물론 더 이상 물을 구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수 십 억 명의 환경난민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인류는 그 해결책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불교, 천주교, 원불교, 기독교 성직자 10여명이 함께 길을 나선다. 각 자 추구하는 신은 다르지만 그 중심엔 생명존중사상이 있다. 생명에 대한 눈 뜸이 없이 어찌 시대를 새롭게 할 수 있겠는가?

생명을 들여다보라. 모든 생명은 신비로 가득하며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 생명의 신비를 알고 모든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길이 종교의 길이 아닐까? 우리는 사랑의 마음 하나 가지고 순례를 시작한다. 하나님과 땅과 대자연이 베풀어준 은혜에 비하면 내가 나눌 사랑은 너무나 적다. 하지만 사랑은 나눌수록 더 커진다는 진리를 믿기에 이 작은 사랑의 행보로 개발주의 광풍을 잠재우고 인간의 탐욕을 버리고자 한다.

또한 우리의 산천을 있는 그대로 존속시켜 지구생태계를 살리고 우주를 구원하게 되길 기도한다. 그 희망으로 이 길을 나선다. 하나님과 대자연이 우리와 함께 함을 확신한다. 양재성 목사

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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