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늘의 福音 묵상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 남북통일 기원 미사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 남북통일 기원 미사

(신명30.1-5.에페4.29-5.2.마태18.19ㄴ-22)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새겨들어야 할 일입니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마태 18,19-20)

바로 '이 땅'이 우리가 이루어야 할 친교와 화해의 장소라는 말씀입니다.

먼 훗날이 아니라, 평화로운 새로운 새 땅에서가 아니라, 바로 여기에서 바로 지금, 서로 마음을 모으라는 호소입니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

이는 허물을 탓하지만 말라는 말씀이요, 동시에 무한히 끝까지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곧 용서하는 데 있어서 아무런 조건이나 단서를 달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반드시 죄를 고백해야만, 혹은 용서를 청해야만,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때로는 완고하고 고집부리더라도, 혹은 계속해서 똑같은 죄를 반복해서 짓더라도,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우리는 지금도 남북의 형제들끼리 적대 논리로 서로를 적으로 강요당하며, 서로 죽이는 살인 연습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적이 아니라 형제가 되어야 할 때입니다.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적대감과 대립을 몰아내야 할 일입니다.

편견과 거짓과 위선을 몰아내고, 그리스도 안에서 화해와 용서, 일치와 사랑이 필요할 때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는 특별히 '오늘'이라는 말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서,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한 대로 순종하기만 하면 ~ 너희를 다시 모아들이실 것이다.”(신명 30,2-3)

이는 축복과 저주는 하느님께서 주관하시는 것이지만, 동시에 인간에게도 달려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처럼 분단 극복과 화해와 일치의 실현에는 그동안의 우리의 불성실을 성찰하는 동시에, 바로 오늘 우리의 책무와 투신이 요청됩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할 새로운 생활 법칙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입에서는 어떠한 나쁜 말도 나와서는 안 됩니다."(에페 4,29)

사실 우리들 사이의 분쟁의 상당한 것들은 잘못된 말이나, 욕, 비난, 중상모략, 거짓말로 시작되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남과 북이 서로를 비방하고, 거짓 뉴스와 유언비어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를 멈추고, 오히려 서로를 격려하고 고무, 찬양해야 할 일입니다.

축복을 가져다주는 좋은 말, 기쁨과 칭송의 말을 해야 할 일입니다.

이어서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하느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에페 4,30)

이는 형제들에게 하는 '모든 원한과 격분과 분노와 폭언과 중상과 온갖 악의'가 사실은 바로 그들 안에 있는 성령께 대한 모독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들의 몸이 하느님께서 거처하시는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서로 욕하고 비방하는 것은 성령을 모독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반면에 우리가 형제를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성체조배’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형제 안에 거하시는 예수님을 예배드리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에페 4,32)

사실 용서는 하느님께서 거저 주시는 은총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거저 받은 것을 마땅히 이웃에게 거주 주어야 할 일입니다.

특히 대립과 반목으로 오랫동안 쌓여온 남북의 적대를 용서로 바꾸어야 할 일입니다.

그것은 내가 ‘먼저 용서’하는 일입니다. 먼저 물꼬를 터야 함께 터지게 됩니다.

그러니 상대가 화해하기를 바라지 않아도 먼저 화해하려 해야 할 일입니다.

‘네가 먼저 하라’고 버팅기다가 영영 화해하지 못하지는 말아야 할 일입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어”(에페 5,1) 그리스도처럼 자신을 화해와 일치를 위해 바치는 향기로운 산 제물이 되어야 할 일입니다. 사실 죄와 죽음을 이겨내신 부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화해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부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2-23)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

주님!

일곱 번이 아니라 이제는 더 큰 사랑으로 용서하게 하소서.

먼저 용서하고 용서에 사랑을 더하게 하소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끝까지 용서하셨으니,

용서할 뿐만 아니라 더 큰 선으로 사랑하고, 그가 잘 되도록 기도하게 하소서.

아무리 꺾이어도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으신 주님처럼, 저 역시 당신의 희망을 저버리지 않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