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난한 삶 >
[소욕지족小欲知足],
적은 것으로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넉넉해진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자기 나름대로의 꽃이 있다.
각자 그 꽃씨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옛 성인이 말했듯이
역경을 이겨내지 못하면
그 꽃을 피워낼 수 없다.
하나의 씨앗이 움트기 위해서는
흙 속에 묻혀서 참고 견디어내는
그와 같은 인내가 필요하다.
그래서 사바세계,
참고 견디는 세계라는 것이다.
여기에 감추어진 삶의 묘미가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사바세계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기억하기 바란다.
극락도, 지옥도, 아닌 사바세계,
참고 견딜만한 세상,
여기에 삶의 묘미가 있다.
어떤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그것을 전부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막다른 길이라고 낙담해서는 안 된다.
우리 전 생애의 과정에서 볼 때
그것은 마땅히 통과해야 할
하나의 관문이다.
한 생애를 두고 그런 관문이
한두 개 있는 것이 아니다.
몇 고비가 있다.
그와 같은 관문을 하나씩 통과할 때마다
정신적인 연륜이 쌓여간다.
육체적인 나이만 먹는 것이 아니라
그런 어려운 관문을 거칠 때마다
정신적인 나이가 쌓여 가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 새로운 눈이 열린다.
그래야 인간이 성숙해진다.
눈앞 일만 가지고
너무 이해관계를 따져서는 안 된다.
전 생애의 과정을 통해서
객관적으로 살필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고뇌에서 벗어나려면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우선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작은 것을 가지고도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인간의 행복(幸福)은
큰데 있지 않다.
지극히 사소하고
일상적인 조그만데 있다.
아침 햇살에 빛나는
자작나무의 잎에도
행복은 깃들어 있고,
벼랑 위에 피어있는 한 무더기의
진달래 꽃 속을 통해서도
하루에 일용할
정신적인 양식을 얻을 수 있다.
지극히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 속에
행복의 씨앗이 깃들어있다.
빈 마음으로
그걸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하나가 필요할 때
하나로써 만족해야지,
둘을 가지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그 하나마저도 잃게 된다.
그건 허욕이다.
그러니 하나로써
만족할 수 있어야한다.
행복은 그 하나 속에 있다.
둘을 얻게 되면 행복이 희석되어서
그 하나마저도 마침내 잃게 된다.
이렇게 말하면
그러다 언제 잘 살겠느냐고 하겠지만
이런 어려운 시대에는
작고 적은 것으로서
만족하며 살아야 한다.
그래야 마음의 평화(平和)를
잃지 않는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죄악 중에서도
탐욕(貪慾)보다 더 큰 죄악은 없고,
재앙 중에서도
만족할 줄 모르는 것보다
더 큰 재앙이 없으며,
허물 중에서도
욕망을 다 채우려는 것보다
더 큰 허물은 없다.
죄악(罪惡)이라는 게 무엇인가?
분수에 지나친
욕망인 그 탐욕에서 온다.
그래서 경전에서는 탐욕이
생사윤회의 근본이라고 말한다.
탐욕은
자기 분수 밖의 욕심이다.
노자는 뒤이어서 말한다.
따라서 넉넉할 줄 알면
항상 풍족하다.
결국은 만족하면서
살라는 가르침이다.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떤 어려운 일도,
어떤 즐거운 일도 영원하지 않다.
모두 함께 일뿐이다.
한 생애를 통해서
어려움만 지속된다면
누가 그것을 감내하겠는가?
다 도중에 하차하고 말 것이다.
모든 것이 한 때이다.
좋은 일도 늘 지속되지는 않는다.
좋은 일만 있다면
사람이 오만해 진다
어려울 때일수록
낙천적인 인생관을 가져라.
덜 가지고도
더 많이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전에는 무심히
지나치던 인간관계도
더욱 살뜰히 챙겨야 한다.
검소하고 작은 것으로서
기쁨을 느껴라.
우리 인생에서 참으로 소중한 것은
어떤 사회적인 지위나 신분,
소유물이 아니다.
우리들 자신이
누구인가를 아는 일이다.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 물어 보라.
이런 어려운 시기를 당했을 때,
도대체 나는 누구지?
나는 누구인가? 하고
스스로 물어야 한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직위나 돈이나 재능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으로서 우리가 어떤 일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따라서
삶의 가치가 결정된다.
만족할 줄 모르고
마음이 불안하다면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의 한 부분이다.
저마다 독립된 개체가 아니라
전체의 한 부분이다
우리들 한사람 한사람이
세상의 한 부분이다.
세상이란 말과 사회라는 말은
추상적인 용어이다.
구체적으로 살고 있는 개개인의
구체적인 사해이고 현실이다.
우리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혈연이든 혈연이 아니든 관계 속에서
서로 얽히고 설 켜서 이루어진다.
그것이 우리 존재이다.
따라서 한 마음이 청정하면
온 법계가 청정해진다는 교훈이 있다.
한 송이 꽃이 피어나면
수천, 수만 송이의 꽃이
잇따라 피어난다는
가르침이다.
이것을 추상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한 집안에서 어머니나 아버지
혹은 자식 한 사람의 마음이
지극히 평온하면 메아리가 되어
모든 식구가 다 평온해진다.
그러나 가정의 중심인
어머니의 마음이
불안하다고 해 보라,
그 마음은 그대로
아버지한테 전달되고
또 자식들에게도 옮겨진다.
왜냐하면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 뿌리에서 나누어진
가지들이기 때문이다.
어느 한쪽 가지에 이상이 생기면,
나무 전체에 이상이 생기게 마련이다.
- 법정 스님
'쉬며 목 축일 샘-法頂'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애송시> (0) | 2024.08.06 |
---|---|
<소음기행> (0) | 2024.08.03 |
<남에게 항상 너그럽게 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0) | 2024.07.12 |
<책을 읽지 않으면 삶이 녹슨다.> (0) | 2024.06.20 |
<법정 스님의 잠언록> (0) | 2024.06.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