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 제18주일 - 기적의 마중물을 내놓자
- 요한6.24-35
얀 롬보우츠 작 ‘오병이어의 기적’, 1525~ 1530년.
예수님께서 한 아이가 내놓은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장정만도 그 수가 오천 명쯤 되는 많은 이들의 배고픔을 해결해 주셨다는 이야기가 오늘의 복음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생명의 빵으로 드러내시어 단순한 육체적 배고픔뿐만 아니라 영적인 갈망도 온전히 채워주시는 분,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임을 밝히고 계십니다.
공생활이 시작된 이후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의 현장을 직접 목격하였던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예언자로 알아보았고 그분의 능력에 큰 기대를 걸었습니다. 그러나 예언자로 불렸던 예수님께서는 복음선포의 사명을 수행하실 때 끊임없이 사람들의 협력과 참여를 바라셨습니다. 직접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들에게 말씀 선포와 구마와 치유의 권한을 주시고 파견하셔서 복음 선포의 협조자로 삼으셨습니다.
오병이어의 놀라운 기적 이야기에도 한 아이가 가져온 보잘 것 없는 빵과 물고기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많은 군중을 배불리 먹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었지만, 아이가 작은 것을 내놓자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소중하게 받아들이시어 많은 이들이 배불리 먹고 남은 빵조각이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차고도 넘치는 놀라운 일을 이루셨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권능을 지니신 분이셨기에 인간의 도움 없이도 어떤 일이든 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일을 이루어 가는데 함께할 수 있도록 우리를 초대해주십니다. 우리가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알아들을 수 있는 방법으로 우리와 함께 당신의 일을 이루어가길 원하십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세상에서 당신의 기적을 꽃피우기 위해 준비하고 계십니다. 아울러 그 기적을 위해서 빵과 물고기를 내놓은 아이처럼 우리의 참여와 협력을 기다리십니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다는 오늘의 세상에서도 여전히 기아로 죽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소식을 쉽게 들을 수 있습니다. 또한 각종 폭력과 억압과 차별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도 어렵지 않게 목격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세상과 인생의 난제들을 직면하게 될 때 우리가 느끼는 첫 감정은 무기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마치 많은 군중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한 빵을 어디에서 구할 수 있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여기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요한 6,9)라는 한 제자의 대답에 담겨있는 심정 같은 것입니다. 만일 그 많은 세상의 문제들을 우리가 지닌 힘과 능력으로만 해결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너무도 쉽게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며 물러서게 될 것입니다.
믿음과 신뢰를 지니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오병이어의 기적 이야기는 우리가 가진 것이 비록 작고 보잘것 없다 하더라도 믿음을 갖고 그것을 예수님께 내어 맡기라고 우리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오천 명이 넘는 군중을 위해서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것이었지만,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의 봉헌이 예수님께서 이루신 놀라운 기적의 촉매 역할을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내어 맡길 수 있는 ‘빵과 물고기’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참여와 협력을 바라며 기다리고 계신 주님께 우리는 어떤 모습과 방법으로 다가서고 있는지 함께 묵상해 보면 좋겠습니다. 우리 눈에 보잘 것 없고 하찮게 보이는 것이지만 주님께서는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시고 그것을 통해 당신의 놀라운 일을 이루신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 유승록 신부(서울대교구 주교좌 기도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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