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가 시끄러워야 세상이 평화롭다
놀이가 사라진 시대
영화 ‘오징어 게임’이 유명해졌던 2021년, 시·도교육청에서 관할 초등학교에 공문을 보냈다. 학부모들에게 배포하라고 한 ‘특정 매체를 모방한 학교폭력 사례 발생 우려’ 가정통신문에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을 하며 탈락한 친구를 때리는 행위’, ‘딱지치기 하고 지면 뺨을 때리는 행위’ 등의 예시를 들어 놀이가 폭력으로 변질된 게임을 하지 않도록 가정에서 지도해 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1)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 이는 아이들 잘못이 아니다. 학부모의 세대가 달라지고,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아이들은 이런 놀이를 해 본 적이 없었고, 단지 영화로만 접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지는 사람의 뺨을 때리고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 규칙이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이 왜 학교 폭력에 해당되는지’ 아이들은 물론이고, 학부모도 이해를 못한다.
그 당시 참교육학부모회 상담실에도 초등 1학년 학부모가 전화해서 “우리 아이는 오징어 게임을 따라 했을 뿐인데 왜 학교폭력 가해자라고 하냐”면서 억울해 했다.
미디어만 문제가 아니다.
어른들은 마을 곳곳에 있던 어린이 놀이터를 없애고 그 자리에 자신들을 위한 주차장이나 운동 기구를 설치했다. 학교는 100미터 달리기도 못할 정도로 운동장이 작아지고, 심지어 서울시교육청은 주상복합 개념의 ‘주교복합’ 설립도 계획 중이라고 한다.
아이들이 없어서 공간을 효율적으로 운용한다는 생각은 틀렸다. 아이 한 명을 위해 온 마을이 바뀐다면 그 모습을 보고 아이를 낳고 싶어지지 않을까.
흙을 밟고 뛰어 노는 어린 시절은 어른들의 추억에만 존재하는 시대가 되었다.
놀이는 아이들의 밥이다
아이들은 깨어 있는 모든 순간이 ‘놀이’다.
아기를 임신했을 때부터 의사는 태아가 ‘잘 노는지’ 묻는다. 놀이는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성장시키는 ‘밥’이고, 잘 노는 아이가 건강하게 잘 큰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놀지 못하게 하는 것은 밥을 주지 않는 것과 같은 수준의 ‘아동 학대’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놀이가 필요하다고 했더니 놀이 교육과정을 만들고 수업으로 진행한다. 교과목에 ‘놀이’ 글자만 덧붙인 ‘또 하나의 학습’이 되어 버렸고, 각종 프로그램과 교구를 개발한 놀이 상품이 늘어났다. 현재 어린이집과 유치원들이 각자 해석해 적용하고 있는 놀이 중심 교육과정에 대해서도 실태 파악과 심도 깊은 숙의가 필요하다.

(이미지 출처 = Pxhere)
2003년 서울 지역의 전래놀이 소모임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확산된 참교육학부모회의 ‘와글와글 놀이터’는 학부모들이 놀이터 이모가 되어 학교와 마을에서 아이들에게 놀이를 돌려주는 활동이다.
특별한 강사 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다. 아이들은 긴 줄 하나, 공 하나만 있어도 스스로 규칙을 정하고 방법을 찾아 놀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없어도 어떻게든 놀 수 있는 능력이 아이들에겐 있다. 놀이터 이모는 단지 안전하게 놀 수 있도록 아이들을 지켜볼 뿐이다.
강원도교육청의 ‘놀이밥 100분’은 와글와글 놀이터에서 착안해 강원도의 모든 초등학교에서 하루 100분의 놀이 시간(자유 시간)을 보장한 정책이다. 강원도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혁신학교를 중심으로 놀이를 하는 학교들이 많아졌었는데 학교폭력 건수를 감소시키게 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놀이를 통해 의견을 조율하고 협력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놀이 활동이 중단되고, 교육감이 바뀌면서 놀이 정책이 사라지기도 했다. 하지만 놀이터가 시끄러워야 아이들이 잘 크고 학교가 평화로워진다는 것을 경험한 학교들은 지금도 중간놀이 시간을 운영하고 있다. 아이들을 잘 자라게 하는 ‘놀이 밥’ 시간은 모든 초등학교에 필수로 두도록 의무화해야 한다.
아이들은 미래가 아닌 ‘현재’의 주인공
어린이·청소년에게 우리는 ‘미래의’ 주인공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은 이렇게 답한다. “우리는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현재를 살아가는 자기 삶의 주인이지, 미래만 바라보며 지금을 희생하는 존재가 아니다.”
지금 우리는 이들에게 어떤 현재를 보여 주고, 어떤 미래를 강요하고 있을까.
2024년 5월 21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발언대에 초등학교 6학년 한제아 학생이 올라섰다. 이 학생은 2022년 영유아를 비롯한 어린이 62명으로 구성된 ‘아기 기후소송’ 청구인단에 참여한 당사자다. 한제아 학생은 “저는 아기기후소송에 참여한 예순한 명의 동생들과 두 살 된 사촌 동생 아윤이를 대신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라고 말하며 “동생이 겪을 미래에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또, “대부분의 어른들은 기후위기 해결과 같은 중요한 책임에 관해 대답을 피하는 듯하고 어쩌면 미래의 어른인 우리에게 떠넘기고 있는 것 같다”면서, “기후변화와 같은 엄청난 문제를 우리에게 해결하라고 하는 것은 절대로 공평하지 않다. 미래가 지금보다 더 나빠진다면 우리는 꿈꾸는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호소했다.
“지금 당장 행동하지 않으면,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면서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마무리했다, 이날 한제아와 다른 청구인들은 정부의 탄소중립기본법상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불충분해 생명권·환경권·세대 간 평등권 등을 침해하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강조했다.2)
한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온 마을은 아이의 배움터가 된다. 가족, 교사, 친구뿐만 아니라 자연, 시설, 문화 등 모든 것이 아이에게 ‘배움’을 주고, 우리는 그 아이를 통해 배운다.
하지만, 아이 낳기 싫은 나라, 아이들이 사라진 마을엔 더 이상 새로운 배움이 일어날 수 없다. 단지 낡은 관습만 남을 뿐이다.
우리가 아이들에게서 빼앗은 것들, 아이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것들을 지금 당장 돌려줘야 한다.
1) '오징어게임 후폭풍?···“딱지치기 하고 뺨 때리면 안 돼요” 공문', <오마이뉴스>, 윤근혁 기자, 2021. 10.29.
2) '헌재에 울린 초등학생의 호소···“지금 하지 않으면 모든 걸 포기해야 할 수도”', <경향신문> 김나연 기자, 2024.5.21.

이윤경
사교육 기업에서 홍보 업무를 담당하다 2011년 여성단체 상근 활동가로 취업한 후 마을공동체 살리기, 차별 반대, 교육개혁 운동 등 활동가의 삶을 살고 있다.
소비자를 설득하는 마케터에서 활동가, 상담가, 조직가로 지나온 시간 속에 언제나 ‘진심’을 다했던 경험들이 자랑이자 자산이다. 공저로 "대한민국 교육트렌드 2024", "한국 교육의 오늘을 읽다", "학교, 회복을 담다", "체벌 거부 선언"이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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