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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길동무 얘기

대통령이란 무엇인가​

대통령이란 무엇인가

발칙한 제목에 놀라지 않길 바란다. 여기서 대통령이란 특정 개인을 말하는 게 아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4장 1절에 나오는 그 직위로서의 ‘대통령’이다. 국가 원수이자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 정부의 수반이자 국군을 통수하는 대통령, 계엄을 선포할 수 있고 재직 중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 대통령, 또한 국회의 탄핵 소추를 받을 수 있는 그 대통령이다.

헌법은 대통령 권한과 직무 범위를 정하고 있지만, 실제로 대통령이 하는 일은 법의 명시적 한계를 넘어선다. 종종 ‘고도의 통치행위’로 불리는 정치 그 자체가 대통령 일이다. 정치란 국가의 자원을 배분하고, 이해관계와 갈등을 조정하며, 다양한 정책을 수립·집행하여 국민의 생명과 권리를 보호하는 일을 말한다.

이런 대통령의 책무는 헌법에 담겨 있고, 그 핵심은 1조에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통령은 대한민국과 민주공화정을 수호해야 하고, 주권자인 국민을 존중해야 한다. 이런 헌법정신을 지키지 않는 대통령은 존재할 수 없다. 어딘가에 대통령이라는 명칭을 단 개인은 존재할지 몰라도 헌법이 요구하는 그 대통령은 이미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름, 곧 명칭은 중요하다. 공자는 정치의 원리가 ‘정명’이라고 했다. 이름을 바로잡는 것이다. 이름을 바로잡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라와 은나라의 폭군 걸왕과 주왕을 탕왕과 무왕이 토벌한 것에 대해 제나라 선왕이 맹자에게 물었다. ‘신하가 왕을 죽인 일이 있습니까?’ 맹자가 답했다. ‘흉포한 필부를 죽인 일은 있어도, 왕을 죽인 일은 없다.’ 그 이름에 맞지 않는 왕은 이미 왕이 아니기 때문에, 폭군방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선에서 있었던 폐위 사건은 모두 ‘돌이켜서 이름을 바로잡은 것’, 곧 반정으로 명명되었다.

현대 민주주의의 탄핵 원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헌법에 명시된 탄핵 대상은 ‘대통령·국무총리·국무위원·행정각부의 장·헌법재판소 재판관·법관·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감사원장·감사위원·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까지 다양하고, 탄핵 절차도 국회 3분의 2의 찬성으로 동일하다. 대통령이라고 별다를 것이 없다. 모두 그 직위의 명칭에 따른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주권을 위임받은 국회 다수의 뜻에 따라 사람을 바꾸는 것이다. 그래서 탄핵이란 현대적 의미의 정명이다.

물론 정명이 그 지위의 사람을 바꾸는 것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마지막 수단이다. 다른 모든 노력이 무위로 돌아갔을 때, 불가피하게 벌어지는 일이다. 그래서 탄핵은 거부권과 마찬가지로 아무리 법에 정해진 절차라 하더라도 자주 거론할 만한 일은 아니다. 조선시대에 툭하면 양위를 입에 올린 왕들의 속내도 반대의견을 가진 신하들을 역모로 몰아버리겠다는 겁박이었다.

이런 일이 자주 벌어지는 정치는 혼탁하고 불안정하다. 그래서 성숙한 민주주의에서는 이런 극단적인 상황에 도달하기 전에 부단히 이름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실 이것이 민주주의에서 정치의 역할이다.

대통령의 일은 헌법에 따라 국민의 뜻을 받들고 삼권분립의 가치를 존중하고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기본이다. 이 기본을 지키지 못한다면 이름에 걸맞다고 할 수 없다. 대통령이 해야 하는 통치는 국가에서 벌어지는 온갖 복잡한 일들을 포괄한다.

이 세상에는 유죄와 무죄가 있고, 나쁜 놈을 때려잡으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식으로 단순하게 생각할 수 없는 것이 통치다. 국정지지율이 잘 나오지 않는 것은 반국가세력이 있어서라는 식으로 생각하면 통치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믿음직한 고등학교 동문들을 불러 모아 일을 맡기면 나라가 잘 돌아갈 것이라고 기대할 수도 없다. 갖은 의혹에 휩싸인 대통령 부인이 현지 지도를 흉내 내는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가끔 생각한다. 대통령이 김치찌개를 끓여서 대접하는 데 들이는 정성과 관심만큼만 통치를 진지하게 생각해 준다면, 지금의 의·정갈등이나, 광복절에 사이비 선동가를 언급하거나, 국회 개원식에 불참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일본의 사정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우리 국민을 생각한다면, 침수되는 걸 보면서 퇴근했다던 대통령이 참사가 난 반지하방을 가리키며 ‘어떻게 대피가 안 됐는가 모르겠다’는 말은 차마 못하지 않았을까.

이번 추석엔, 추석이란 무엇인가만 묻지 말자. 그 질문은 우리의 사적 삶의 의미를 묻는 것이다. 그것만으로 족한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아니다. 지금이야말로 ‘대통령이란 무엇인가’를 물어야 할 때다. 대통령은 무엇인가.

이관후 정치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