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세는 가을날에
마음이 건조하던 날, 마침 친한 수도공동체에서 축제가 있으니 꼭 와 달라는 초대를 받았다. 이 수도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에 생긴 국제 미션 공동체(Verbum Dei Missionary Fraternity)로, 유기 서원자들을 위해 강의를 하거나 피정 지도를 해 주곤 했었다.
성당에 들어서니, 스페인말로 미사가 진행되고, 성당을 가득 메운 남미 이민자들. 그 진지하고 절실한 신앙의 모습들이 훅 들어온다. 세상에 살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 특히 살 곳을 잃어버린 많은 이주민을 위해 기도하는 그들의 모습에, 하느님나라를 갈망할 수밖에 없는 가난이 왜 축복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축제가 시작되자 흥겨운 멕시코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아이들은 엄마의 손을 잡고 한껏 즐거워하며, 수녀원 콘크리트 마당 곳곳에 만들어진 음식 부스의 음식을 먹기 위해 줄을 선다. 모르는 사람과도 친근한 웃음을 주고받으면서, 사람들 사이에 느껴지는 따스함에 마음이 촉촉해진다.
내 친구 수녀는 어젯밤에 캐나다에서 피정을 지도하고 돌아와 독일식 디저트 빵을 만들었다고, 피곤해 죽겠다고 내 귀에 속삭였다. 그러고 보니 내 친구 수녀의 머리뿐 아니라, 젊디 젊던 수녀들의 머리도 조금씩 세었다. 그들은 오늘도 웃으면서, 바삐 돌아다니며, 진행 상황을 살피고 있다. 아 우리의 삶도, 미션도 이렇게 늙어 가는 건가를 생각하게 된다.

세상의 모든 집 없는 사람들, 특히 전쟁으로 살 곳을 잃은 사람들을 생각하는 미사에, 남미에서 온 그들의 기도는 간절하고 또 따뜻하다. ⓒ박정은
아닌 게 아니라 이번 축제는 이 선교회 수녀들의 보험금 마련을 위해 마련되었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오늘의 복음 말씀이 왠지 낯설게 다가온다. 부자 청년에게 하신, “가진 것을 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너는 나를 따르라”는 이 말씀이, 가진 것을 다 팔아, 자기를 내어 주고, 따르느라 젊음을 바친 이들의 얼굴과 겹쳐진다.
건강 보험을 사기 위해 자금을 모아야 하는, 젊음이 스러져 가는 수녀들의 익숙한 얼굴을 보면서, 마음이 착잡해진다. 내게 미션이란 늘 젊은 것이고, 버리고 떠나는 가벼움이어서인지 늙어 가는 선교사라니 왠지 낯설다.
하지만 미션이 삶의 자세이고, 또 한없이 자기의 경계를 넘어가는 환대의 정신이라면, 늙은 선교사는 여전히 아름답고 거룩하며 우리는 모두 늙어 가는 선교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늙어 가는 선교사의 삶은 왠지 슬프다. 그렇게 보자면, 모든 아름다움이나 거룩함에는 슬픔이 베어 있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난주에 베트남과 홍콩에서의 수업을 마치고 무사히 돌아왔는데, 거기서 만난 한 선교사의 나눔이 아직도 마음에 아픈 가시처럼 걸려 있다. 십여 년을 베트남에서 살고,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인간적 평가를 뒤로하고, 그 선교지를 떠나야 하는, 내가 듣기엔 좀 억울할 것 같은, 상황을 이야기하던 그 선교사의 마음이 자꾸만 떠오른다.
가벼운 맘으로 그곳을 떠나기 위해 마음을 다잡으려 노력한다는 그 선교사의 슬픈 눈빛에서 진정한 가난을 본다. 그러니 어쩌면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내가 가진 것을 다 내어 놓는 행위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겠다는 황홀한 젊은 날의 선택이라기보다는 내가 한 헌신이나 사랑에 대해, 어느 것도 나의 영광이나 성공으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참담한 슬픔, 혹은 가난일 거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바로 이 시간은 우리에게 진정한 소명을 가르쳐 주는 은혜의 시기라고 생각해 본다. 젊은 선교사에게는 잘 느껴지지 않을, 뜨거운 열정 뒤에 남는 아릿한 슬픔 같은 처연한 사랑을 감지하는 인생의 가을에 대해서.

수도원 마당에서 열린 축제. 각국의 음식이 놓이고, 신나는 라틴 음악이 흐르고. 이제는 머리가 하얘진 수녀님들의 의료보험금이 마련되길 바라면서.... ⓒ박정은
오지 않을 것 같던 가을이 우리에게 왔고, 이런 아름다운 시절, 시월에 하느님의 백성인 우리는 미션을 생각한다. 미션을 생각하는 이 성월이 왜 가을이어야 하는지를 알 것도 같다. 누군가는 생태적인 위기를 모두 걱정하는 여름 같은 요즈음의 세상에서 가을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내게 질문을 던졌는데, 내가 느끼는 가을의 날씨가 아니라고 가을이 아닌 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을 곰곰이 한다.
한국 사람인 나에게 가을이 스웨터를 입고, 친구와 차를 마시거나, 나뭇잎이 바람에 날려 가는 풍경을 홀로 목도하는 일이라고 해서, 세상의 모든 사람의 가을 풍경이 그러하지는 않을 것이다.
무더운 베트남의 날씨 속에서도 분명 가을은 있었다. 누군가는 보름달이 뜬 추석날 땀을 뻘뻘 흘리며 아이들과 등불을 밝혔으며, 여전히 이 세상의 누군가는 가을의 의미를 담아 열심히 살고 있다. 그리고 나무는 또 여전히 과일을 내고 있다. 그렇게 또 누군가는 여전히 사과나무를 심고 있다.

무더운 날씨에도 절기에 맞추어 집 앞을 장식하는 데 진심인 우리 동네사람들. ⓒ박정은
내가 사는 미국의 알라미다도 이상 기온으로 날씨가 무척 더웠다. 홍콩이나 베트남의 가을날은 으레 그러려니 해서 괜찮았는데, 우리 동네가 삼십도 가까이 온도가 올라가니, 마음이 더 심란했다. 아니 나는 또다시 여름날을 살아야 하는가 하는 짜증도 슬며시 올라왔다. 너무 더운 날이라 산책을 나가기도 힘들었다.
그런데 조금 온도가 내려간 저녁에 산책을 나갔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동네 사람들은 그 더운 날에도 핼러윈을 준비하고 있었다. 삶과 죽음의 거리가 옅어진다는 그 밤, 많은 어린이가 사탕을 얻어먹고, 평소에 생각하지 않는 죽음과 그 공포를 가까이 만지고 체험하는 핼러윈을 위해 온갖 무시무시한 이미지로 집을 장식하고 있었다.

아무리 더워도 가을날은 흐르고 있고, 바람이 불 때마다 상수리나무는 도토리를 떨구고, 이 세상을 사는 우리도 매 순간 다 버리고 주님을 따르기로. ⓒ박정은
아니 이 더운 날에 이들은 도대체 이런 일을 언제 한 걸까 하는 생각을 하다, 절기를 아는 것, 시간을 아는 것은, 꼭 내가 기온으로 체감하는 것 그 이상의 것임을 보여 주는 나의 이웃들, 그들의 때를 아는 지혜를 감사했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죽음을 묵상하기 전에, 난, 그리고 우리는 신앙인으로서의 미션을 살아 보아야 한다. 그리고 늙음 혹은 늙어감이란 삶의 리듬 속에서 미션은 과연 무엇인지를 고민해 보아야 한다. 무더운 오늘, 산책길에 보니, 바람이 불 때마다 우우 하고 도토리가 떨어진다. 상수리나무는 아무러하지 않게 그저 도토리를 떠내 보내고 있다.

박정은 수녀
홀리네임즈 대학 명예교수. 글로벌 교육가/학습자. 지구화되는 세상에서 만나는 주제들, 가난, 이주, 난민, 여성, 그리고 영성에 대해 관심한다. 우리말과 영어로 글을 쓰고, 최근에 "상처받은 인간다움에게: 나, 너 그리고 우리의 인문학"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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