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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김수환 추기경

<나무는 죽어서도 향기를 남기고>

<나무는 죽어서도 향기를 남기고>

-김수환 추기경님 선종 1주기에 부쳐-

글쓴이:오지연

김수환 추기경님

하늘나라 가신 날

귓볼이 얼얼한 칼바람 속에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명동 근처 지하도를 건넌다.

길 잃은 사람들의

이불이 되어 주는 신문지

집 없는 사람들의

잠잘 방이 되어 주는 종이상자

나무는 알았을까?

겨울 꿈 꾸는 조그만 씨앗

웅크려 잘 동안 얼지 않게

지닌 잎 떨구어 덮어 주던 마음

푸른 싹 틔워 다시 살아날 줄을.

밥이 되자,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의

밥이 되어야 하는데…….

낮은 자들을 위한 기도로

늘 서 있는 나무처럼

잠 못 이루는 밤을

수없이 보내시고

고통을 온몸으로 품으셨네.

아래로, 더 아래로…….

광주의 고통받고 아픈 이들과

함께 우시고

철거촌 집 잃은 사람들 곁에서

미사를 보시며

그들의 콧물과 눈물을

손수 닦아 주시는

두루마리

휴지가 되어 주셨네.

사람들은 어느새

새들과 벌레들처럼

큰 고목의 구멍에 깃들며

그 품에서

안식과 위로를 얻었네.

아낌없이 주던 나무처럼

입으시던 한 벌 옷

매미처럼 허물로 남겨놓고

오신 그대로

빈손으로 가셨네.

밑동까지 모두 다

내어 주시고도

나는 없다는 나, 무(無)여.

삼나무 관 속에

한 그루 큰 나무로 누워

그리시던 어머니 품으로 가셨네.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십시오.’

땅에 떨어져 죽은

한 알의 밀알

많은 열매를 맺었고

당신의 눈과 마음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살아

세상 속에 더 많은

기도와 사랑을 낳네.

어둠과 추위를 이길

한 줄기 큰 빛이 되네.

-<월간 소년>, 2010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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