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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며 목 축일 샘-法頂

<행복의 비결 / 법정스님 글 모음>

<행복의 비결 / 법정스님 글 모음>

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는가 하는 것이다.

안으로 충만해지는 일은

밖으로 부자가 되는 일에

못지 않게 인생의 중요한 몫이다.

인간은 안으로 충만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향기로운 차 한 잔을 통해서

행복을 느낄 때가 있다.

또 다정한 친구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

전화 한 통화를 통해서도

나는 행복해진다.

- 법정 스님 <산에는 꽃이 피네> 중에서 -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이 어디 있는가.

모두가 한 때 일 뿐,

그러나 그 한 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

-버리고 떠나기 에서-

내 소망은 단순하게 사는 일이다.

그리고 평범하게 사는 일이다.

느낌과 의지대로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그 누구도, 내 삶을 대신해서 살아줄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나답게 살고 싶다

-오두막 편지 에서-

빈 마음, 그것을 무심이라고 한다.

빈 마음이 곧 우리들의 본 마음이다.

무엇인가 채워져 있으면 본 마음이 아니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 울림이 있다.

울림이 있어야 삶이 신선하고 활기 있는 것이다.

-물소리 바람소리 에서-

사람은 본질적으로 홀로일 수밖에 없는 존재다.

홀로 사는 사람들은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살려고 한다.

홀로 있다는 것은 물들지 않고 순진무구하고 자유롭고

전체적이고 부서지지 않음을 뜻한다.

-홀로 사는 즐거움 에서-

우리 곁에서 꽃이 피어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생명의 신비인가.

곱고 향기로운 우주가 문을 열고 있는 것이다.

잠잠하던 숲에서 새들이 맑은 목청으로 노래하는 것은

우리들 삶에 물기를 보태주는 가락이다.

-산방한담 에서-

행복은 결코 많고 큰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작은 것을 가지고도 고마워하고 만족할 줄 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여백과 공간의 아름다움은 단순함과 간소함에 있다.

-홀로 사는 즐거움 에서-

가슴은 존재의 핵심이고 중심이다.

가슴 없이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다.

생명의 신비인 사람도,다정한 눈빛도,

정겨운 음성도 가슴에서 싹이 튼다.

가슴은 이렇듯 생명의 중심이다.

-오두막 편지 에서-

나는 누구인가.스스로 물으라.

자신의 속얼굴이 드러나 보일 때까지

묻고 묻고 물어야 한다.

건성으로 묻지말고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귀 속의 귀에 대고 간절하게 물어야 한다.

해답은 그 물음 속에 있다.

- 산에는 꽃이 피네 에서 -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전 존재를 기울여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이 다음에는 더욱 많은 이웃들을 사랑할 수 있다.

다음 순간은 지금 이 순간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지 시절이 달로 있는 것이 아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에서-

버리고 비우는 일은 결코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버리고 비우지 않고는

새것이 들어설 수 없다.

공간이나 여백은

그저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과 여백이

본질과 실상을 떠받쳐주고 있다.

-버리고 떠나기 에서-

지혜로운 삶의 선택

꽃이나 새는

자기 자신을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

 

저마다 자기 특성을

마음껏 드러내면서

우주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다.

 

비교는

시샘과 열등감을 낳는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삶에 충실할 때,

그런 자기 자신과 함께

순수하게 존재할 수 있다.

사람마다

자기 그릇이 있고 몫이 있다.

그 그릇에

그 몫을 채우는 것으로

자족해야 한다.

스스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내 그릇과

내 몫을 알아야 하는데

그걸 모르고 남의 몫을,

남의 그릇을

자꾸 넘겨다 보려고 한다.

소유를 제한하고 자제하는 것이

우리 정신을 보다 풍요롭게 한다.

그리고

우리의 생활 환경과 자연을

덜 훼손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법정스님의 글中-

자기답게 사는 것

세상과 타협하는 일보다

더 경계해야 할 일은

자기 자신과 타협하는 일이다.

스스로 자신의 매서운

스승 노릇을 해야 한다.

우리가 일단 어딘가에 집착해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안주하면

그 웅덩이에 갇히고 만다.

그러면 마치 고여 있는 물처럼

썩기 마련이다.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곧 자기답게 사는 것이다.

낡은 탈로부터, 낡은 울타리로부터,

낡은 생각으로부터

벗어나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아무리 가난해도

마음이 있는 한 다 나눌 것은 있다.

근원적인 마음을 나눌 때 물질적인 것은

자연히 그림자처럼 따라온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 자신이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

세속적인 계산법으로는 나눠 가질수록

내 잔고가 줄어들 것 같지만

출세간적인 입장에서는

나눌수록 더 풍요로워진다.

풍요 속에서는 사람이 타락하기 쉽다.

그러나 맑은 가난은 우리에게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주고 올바른 정신을 지니게 한다.

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는가 하는 것이다.

"위에 견주면 모자라고

아래에 견주면 남는다."라는

말이 있듯 행복을 찾는

오묘한 방법은 내 안에 있는 것이다.

하나가 필요할 때는 하나만 가져야지

둘을 갖게 되면 당초의

그 하나마저도 잃게 된다.

그리고 인간을 제한하는

소유물에 사로잡히면

소유의 비좁은 골방에 갇혀서

정신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

작은 것과 적은 것에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청빈의 덕이다.

우주의 기운은 자력과 같아서

우리가 어두운 마음을 지니고 있으면

어두운 기운이 몰려온다고 한다.

 

그러나 밝은 마음을 지니고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살면

밝은 기운이 밀려와

우리의 삶을 밝게 비춘다고 한다.

 

-법정스님의 글中-

*법정스님이 자주 읽는 성경구절*

 

<요한1서 4:20>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입니다.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힌두교 경전 <리그 베다> 중

"하나의 진리를 가지고

현자들은 여러 가지로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요한1서 4:12>

"아직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시고

또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완성될 것입니다."

기도는 하루를 여는 아침의 열쇠 / 법정스님

모든 수행자는 기도로써 영혼의 양식을 삼는다.

기도는 인간에게 주어진 마지막 자산이다.

사람의 이성과 지성을 가지고도

어떻게 할 수 없을 때 기도가 우리를 도와준다.

기도는 무엇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간절한 소망이다.

따라서 기도에는 목소리가 아니라

진실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진실이 담기지 않은 말은

그 울림이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기 존재의 근원을

찿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라고 권하고 싶다.

진정한 기도는

어떤 종교적인 의식이나 형식이 필요 없다.

오로지 간절한 마음만 있으면 된다.

순간순간 간절한 소망을 담은 진지한

기도가 당신의 영혼을 다스려 줄 것이다.

그리고 기도에 필요한 것은 침묵이다.

말은 생각을 일으키고 정신을 흐트려 놓는다.

우주의 언어인 거룩한

그 침묵은 안과 밖이 하나가 되게 한다.

마하트마 간디는

그의 어록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다.

" 사람의 몸에 음식이 필요하듯,

우리의 영혼에는 기도가 필요하다."

" 기도는 하루를 여는 아침의 열쇠이고,

하루를 마감하는 저녁의 빗장이다."

겨울 나무에서 침묵을 / 법 정 스님

겨울철 나무들은 그대로가 침묵의 원형이다.

떨쳐버릴 것들을

죄다 훌훌 떨쳐버리고 알몸으로 의연히 서 있는

나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침묵의 실체 같은 것을 감지할 수 있다.

저 산마루에 빽빽이 서 있는 나목들은

겨울 산의 아름다운 풍경이다.

허공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나무들의 자태가 더욱 정답게 다가선다.

산마루의 나목림 사이로 달이 떠오를 때,

나무와 달은 둘이면서 하나를 이룬

겨울 산의 신비롭고 황홀한 아름다움이다.

겨울 숲을 대하고 있으면

우리 안에서도 침묵이 차오른다.

침묵의 의미를 거듭 챙기게 된다.

평소에 무심히 쏟아버린

말의 가벼움과 침묵의 무게에 따른

그 상관관계를 헤아린다.

추위를 피해 겨울 산을 떠났다가도

침묵의 숲이 그리워

다시 찾아드는 것은 물을 벗어난 어류들이

다시 물을 찾아든 그런 격이다.

요즘 우리들은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능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지그시 참고 기다릴 줄을 모른다.

어떤 사람이 말할 때

긍정할 만한 점이 있다고 생각되면

자신이 생각해낸 말을 덧붙이려는 공명심에서

상대편의 말을 끊어버리기 일쑤다.

이런 일은 남을 탓하기 전에

내 자신이 늘 반성하는 바이다.

될 수 있는 한 상대편으로부터

질문을 받기 전에는

말을 삼가려고 하지만 이 일도

생각대로 잘 안 된다.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

번번이 그 덫에 걸린다. 사람들과

어울렸을 때 설교조로

남을 가르치려고 해서는

안 되는 줄 뻔히 알면서도

이따금 그런 실수를 범한다.

사람을 만날 때는

무엇보다도 명랑한 친절이 따라야 한다.

덕이란 단순히 선행의 수준을 넘어

최선을 다하려는 어떤 성향이다.

덕은 결국 우리 행동을 조절하고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믿고 의지할 만한 힘, 즉 그 능력이다.

늘 생각한 바이지만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남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덕행’밖에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옛말에도 덕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고 한 것이다.

오늘날 종교인들은 어떤 종파를 가릴 것 없이

너무 세속적인 정서에 젖어 있다.

곧잘 시시껄렁한 일에 빠져들고,

소비지향적인 사고에 물들어

영적인 가치를 소홀히 하고 있다.

한마디로 하자면 침묵을 익힐 줄을 모른다.

거룩한 침묵을 통해서

영적인 성장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저 우레와 같은 침묵을 거치면서

진리가 드러났음을 명심해야 한다.

어느 날 위대한 철인 소크라테스한테

이웃 사람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그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이렇게 고함을 질렀다.

“여보게, 소크라테스! 자네에게

꼭 할 말이 있어 이렇게 뛰어왔네.

자네 친구 놈이 말이야….

”소크라테스는 그 사람에게

자기가 하려는 말을

세 가지 체로 걸렀는지 물어보았다.

즉 진실의 체, 친절의 체,

필연성의 체로 걸렀는지를.

소크라테스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만일 자네가 내게 하려는 말이

진실한 말도 아니고,

친절한 말도 아니고, 꼭 필요한 말도 아니라면

그 말은 그저 땅에 묻어버리게.

그래야 자네나 나나 그것 때문에

공연히 속 썩일 일이 없을 거네.

” 겨울 나무를 보고 침묵을 익히고 그 의미를 배우자.

-맑고 향기롭게-법정스님

무소유의 삶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궁색한 빈털터리가 되는 것이 아니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무소유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때

우리는 보다 홀가분한 삶을 이룰 수 있다

우리가 선택한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이것은 소극적인 생활 태도가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만족할 줄 모르고 미음이 불안하면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 마음이 불안하고 늘 갈등상태에서

만족할 줄 모른다면

그것은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의 한 부분이다

저마다 독립된 개체가 아니라 전체의 한 부분이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상의 한 부분이다

세상이란

말과 사회란 말은 추상적인 용어이다

구체적으로 살고 있는 개개인이

구체적인 사회이고 현실이다

우리는 보이든 보이지 않든,

혈연이든 혈연이 아니든

관계 속에서 서로 얽히고설켜 이루어진다,

그것이 우리의 존재이다

법정스님 잠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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