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사도 축일
(에페2.19-22.루카6.12-19)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아 사도라고 부르셨다.>
제가 좋아하는 노래를 보면, 대체로 80년대의 노래입니다. 당시에는 라디오를 통해, 아니면 엘피판이나 카세트테이프를 통해 음악을 들었습니다. 특히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테이프에 담아서 들고 다니며 들었습니다. 음질이 좋았던 것도 아니고, 다양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제일 좋아하는 노래는 당시에 들었던 것들입니다. 지금 훨씬 더 좋은 음질과 멋진 사운드 그리고 다양한 노래가 있음에도 잡음이 잔뜩 들어가 있는 노래에 감탄사를 내뱉었고 지금도 좋아합니다. 부족한 삶에 대한 낭만일까요? 부족했기에 더 집중했고 그래서 사랑했던 것입니다. ‘찌지직’ 거리는 잡음 소리도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긴 영상을 보는 것도 힘들다고 합니다. 그래서 유튜브의 짧은 영상만 보고, 책도 두꺼운 것이 아닌 얇고 글씨 적은 것을 본다고 하더군요. 집중하지 못하게 된 것은 그만큼 풍요로움 속에서 보고 들을 것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요?
부족함이 있어야 작은 것의 소중함도 알게 되고 더 집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부족함보다 풍요로움을 미덕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부족함 속에 있으면 불행한 것으로 단정짓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는 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사도 축일을 지냅니다. 열두 사도의 일원인 두 사도의 축일이기에, 복음은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뽑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지금 이 장면을 보면 얼마나 영광스러울까 싶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의심도 들었을 것 같습니다. 놀라운 기적을 볼 수 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하셨고 먹을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빴기 때문입니다. 바쁘고, 배고프고, 그리고 힘든 시간의 연속이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이시니 분명히 풍요로움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부족함 투성입니다. 이 부족함 안에 계속 머물라고, 전교 여행을 보내실 때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부족함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부족했을 때 행복의 이유를 더 많이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모범을 직접 보여주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삶은 풍요로움이 가득했을까요? 아닙니다. 그 삶도 부족함 그 자체였습니다. 하느님께서 부족함으로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이런 모범을 보여주시는 예수님을 따른다는 우리는 과연 어떤 것을 선택하려고 할까요? 부족함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에서 가장 필요한 덕목이었습니다.
-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
오늘의 명언: 멀쩡한 신체를 가지고도 꿈을 위해 도전할 줄 모르는 것이 바로 장애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도전하는 순간 당신은 이미 승리자입니다(레나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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