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0주간 수요일
(에페6.1-9.루카13.22-30)
<동쪽과 서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1990년대 초반, 노래방이 생겨나면서 친구들과 자주 들렀던 생각이 납니다. 시간제한이 있는 노래방에서 시간이 거의 다 되었을 때(약 1분이 채 남지 않았을 때인 것으로 기억합니다) 불렀던 노래는 꼭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이 땅에 금수강산에~’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노래방에 있는 노래 중에 가장 긴 노래였습니다. 이 가장 긴 노래를 함께했던 친구들이 한 소절씩 부르면서 마무리했던 것이지요.
이 노래가 끝난 뒤에는 시간을 초과하면서 놀았다는 생각에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제일 좋아하는 노래, 잘 부르는 노래, 의미 있는 노래 등으로 마무리합니다. 왜 바뀌었을까요? 시간을 연장하는 것보다 노래 부르는 것 자체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떠올리며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할까? 아니면 지금의 삶 자체가 중요할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당연히 후자인 지금 삶 자체가 훨씬 중요합니다. 그런데 오래 사는 것 자체에만 집착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죽음이야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의 차이는 있지만,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운명입니다.
지금 삶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삶, 자기가 잘하는 삶, 또 의미 있는 삶으로 자기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관심사는 지금 삶에 특히 사랑하며 사는 의미 있는 삶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라는 물음에,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대부분 건강, 재물, 성공이라는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만을 원합니다.
그러나 이런 세상의 가치들을 추구해서는 구원의 길로 향하는 좁은 문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가치를 통해 이 세상에서는 첫째지만, 하느님 나라에서는 꼴찌가 되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비록 세상의 가치를 통해서는 꼴찌처럼 보이더라도, 주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 때 하느님 나라에서 첫째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중요합니다. 지금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만이 구원의 좁은 문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세상 삶을 마치고 주님 앞에 섰을 때, 혹시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라고 말씀하시면 어떨까요? 참으로 막막하고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의 잔칫상을 코 앞에 두고서 울며 이를 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구원의 좁은 문을 향한 지금 우리 삶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
오늘의 명언: 책임감은 성숙에 이르는 첫 걸음이다(헨리 클라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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