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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곰삭한 맛

<사랑의 길>

<사랑의 길>

나는 처음

당신의 말을 사랑하였지

당신의 물빛 웃음을

사랑하였고

당신의 아름다움을

사랑하였지

당신을 기다리고 섰으면

강 끝에서 나뭇잎

냄새가 밀려오고

바람이 조금만 빨리 와도

내 몸은 나뭇잎 소리를 내며

떨렸었지

몇 차례 겨울이 오고

가을이 가는 동안

우리도 남들처럼

아이들이 크고

여름 숲은 깊었는데

뜻밖에 어둡고

큰 강물 밀리어 넘쳐

다가갈 수 없는 큰물 너머로

영영 갈라져버린 뒤론

당신으로 인한 가슴 아픔과

쓰라림을 사랑하였지

눈물 한 방울까지 사랑하였지

우리 서로 나누어 가져야 할

깊은 고통도 사랑하였고

당신으로 인한 비어있음과

길고도 오랠 가시밭길도

사랑하게 되었지.

- 도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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