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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福音 묵상

연중 제32주간 수요일

연중 제32주간 수요일

(티토3.1-7.루카17.11-19)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이솝 우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꼬리 없는 원숭이가 쌍둥이를 낳는데, 그중 하나에게는 엄청난 사랑을 쏟으며 정성껏 젖을 먹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 마리는 외면하고 소홀히 다루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건강하게 어른이 되는 쪽은 홀대받던 새끼였습니다. 정성껏 키운 원숭이는 어미 원숭이가 꽉 껴안는 바람에 젖가슴에 질식해 죽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홀대받던 새끼만이 어른 원숭이가 될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교육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글입니다. 경쟁 사회에서 잘 성장하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품에만 안고 사는 부모의 모습에 안타까울 때가 종종 있습니다.

어렸을 때 어머니의 건강이 그리 좋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학교에 오신 적이 없었습니다. 운동회 때 가족이 모두 와서 응원하는데 저는 늘 혼자였습니다.

비가 오면 어머니들이 우산을 들고 학교 앞에서 기다리는데, 저는 늘 비를 맞고 집에 터벅터벅 걸어가야만 했습니다. 그때는 원망의 마음이 컸습니다. 그러나 혼자서도 잘할 수 있는 힘을 어렸을 때부터 키울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모든 것이 다 만족스러운 상황에서만 감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만족스러운 상황만을 찾으면, 정작 만족스러운 상황에서도 각종 이유를 들여 감사하지 못하게 됩니다. 부족함 안에서 감사를 느끼게 될 때, 비로소 성장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상황에서도 불평불만보다는 감사를, 좌절과 절망의 순간에서도 희망을 발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더 한껏 주님 앞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나병 환자 열 사람이 예수님께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소리를 높여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고통과 아픔을 아셨지요. 그래서 그들의 병을 깨끗하게 하십니다.

이때 당연히 감사의 인사를 올려야 하겠지만, 사마리아 한 사람만이 예수님을 찾아와 감사를 드렸을 뿐입니다. 이를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 영광을 드린 것이라고 표현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열 사람이 치유 받았지만, 단 한 사람만이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진정한 감사를 드렸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족스러운 상황에서만 감사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전에도 자기의 고통과 시련 안에서도 하느님께 대한 굳은 믿음이 있었기에 감사의 마음도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감사의 기도를 바치고 있을까요? 믿음이 없으면 감사의 기도도 바치지 못합니다.

-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

오늘의 명언: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지라도 내가 변하면 모든 것이 변한다(오노레 드 발자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