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2주간 목요일
(필레7-20.루카17.20-25)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제게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늘 망설입니다. 좋은 책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딱 하나를 골라달라고 하면,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를 선택합니다.
‘토지’는 박경리 선생님께서 1969년부터 1994년까지 쓴, 집필하는 데만 무려 25년이 걸린 대하소설입니다. 선생님께서는 ‘토지’ 1부를 연재 중이던 1971년 8월에 암진단을 받고 수술대에 오르셨습니다. 병마와 싸우며 작품을 연재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집필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토지’의 서문에 나오듯이, 목숨이 있는 이상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라면서 고통을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렇게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쓴 글이기에 대작이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고통 없이 자란 포도는 훌륭한 포도주가 될 수 없다고 하지요. 척박한 땅에서 자라야 스스로 뿌리를 깊이 내리면서 진짜 좋은 포도주를 키우지 않습니까?
고통을 모두 피하고 싶어 하는 우리입니다. 그러나 고통의 유익함도 바라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 유익함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고통에 좌절하고 실패로 인해 더 큰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늘 우리에게 모범을 주시는 주님께서도 고통을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의 큰 고통이 부활의 기쁨으로 바뀜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고통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고통 너머에 있는 희망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신앙인에게 이 희망이 바로 하느님 나라입니다.
바리사이들이 하느님 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물어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라고 대답하시지요.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 뜻에 맞춰 이루어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 자신 때문에 우리 가운데 하느님 나라가 있게 된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완전하게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예수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굳게 믿고, 예수님의 뜻에 맞춰서, 예수님과 함께 사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믿음의 삶을 사는 사람은 고통도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고통 너머에 하느님 나라라는 큰 희망이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이 고통을 통해서 더 큰 선물을 주십니다.
앞서 박경리 선생님께서 고통을 마주하면서 ‘토지’라는 대작을 쓸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 역시 고통의 유익을 굳게 믿고 주님의 뜻에 함께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렇게 주님을 기다리는 이들은 마지막 날 주님의 날을 보게 될 것입니다.
-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
오늘의 명언: 이 세상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아인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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