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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福音 묵상

2024년 나해 연중 제32주간 금요일

2024년 나해 연중 제32주간 금요일

복음: 루카 17,26-37

<왜 내 주위엔 유독 나에게 상처 주는 사람들만 있을까?>

오늘 복음에서 마지막 심판의 기준이 나옵니다. 마치 노아의 홍수 때와 같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노아는 하느님의 뜻에 집착하는 사람이었고, 물속에 빠진 이들은 세상 것에 집착하는 이들이었습니다. 세상 것과 하느님 것을 동시에 좋아할 수는 없습니다. 하늘에 집착하는 사람은 하늘로 가고 땅에 집착하는 사람은 땅으로 갑니다.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동시에 좋아할 수는 없습니다.

 

이어 노아의 홍수와 비슷한 내용으로 롯의 아내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롯의 아내는 세상으로 상징되는 소돔에 두고 온 것들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정말 유황불로 온 소돔 땅이 멸망하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보지 말라고 하시는 명을 어기고 뒤를 돌아봅니다. 그렇게 되자 소금기둥이 되어버려 더 이상 천사의 인도를 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세상 것에 대한 집착이 있는 것만으로 멸망하고 만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 목숨을 보존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살릴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목숨을 보존하려고 하는 이유는 목숨을 지켜줄 이가 옆에 없기 때문입니다. 목숨을 잃는 사람은 다시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이 집착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날 밤에 두 사람이 한 침상에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두 여자가 함께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이는 심판의 기준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이란 뜻입니다. 같이 침상에 있어도, 같이 맷돌질해도 행위로는 그 사람을 판별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그 사람이 자신을 지켜줄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의해 세상 것에 집착하느냐, 다 버리고 하느님 나라를 향하느냐가 결정됩니다.

 

제자들은 “주님, 어디에서 말입니까?”라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수수께끼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들도 모여든다.”

독수리는 시체를 뜯어먹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독수리를 부르는 존재는 시체 자체입니다. 생명이 있는 사람에게 독수리는 달려들 수 없습니다. 자칫 자신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왜 내 주위엔 나에게 도움 되는 사람은 없고 나에게 상처를 주는 이들만 있을까?”라고 한탄합니다. 안타깝지만, 그 이유는 자신이 죽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퀸의 보컬 싱어, 프레디 머큐리는 명성을 얻자 교만해집니다. 그래서 팀원들을 저버리고 혼자 솔로 앨범을 내려고 합니다. 그러나 나중에 그가 만나고 있는 이들이 그를 병들게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프레디 머큐리가 자신이 잘못 가고 있었음을 어떻게 깨달았는지를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썩었다. 그래서 주위에 날파리들이 많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 있습니다. 깨진 유리창이 그대로 있다면 사람들은 또 돌을 던집니다. 그 집에 주인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 안에 하느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있다면 내가 강해 보이지 않아도 됩니다.

사람들이 나에게 던지는 상처들이 금방 치유되고 있음을 보고는 그 안에 강한 주인을 모시고 있음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미움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떨까요? 하느님이 그 사람 안에 사실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는 자신을 지켜줄 사람이 없어서 세상 것에 집착하게 됩니다.

오드리 햅번이 그런 경우였습니다. 오드리 헵번은 나이도 많고 별로 유명하지도 않았던 배우 멜 페러란 사람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오드리 헵번은 남편의 재기를 위해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해 남편을 위한 배역을 만들어주었습니다.

오드리 헵번은 남편의 촬영장에 나타나 허드렛일하며 남편을 도왔습니다. 그리고 흥행 보증수표였던 그녀는 남편이 출연하는 별로 인기도 없는 영화에 동반 출연하여 흥행에 성공하게 합니다. 물론 남편이 연출한 형편없는 영화에 함께 출연하여 최초로 흥행에 참패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에겐 오래전부터 다른 여인이 있었습니다. 오드리 햅번은 남편의 불륜 현장을 목격했음에도 이혼을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임신하여 남편을 잡아두려 했지만, 남편이 자녀를 원하지도 않고 결국 영화를 찍다가 낙마하여 유산되고 맙니다.

그런 아내를 돌보지도 않고 오직 돈과 재산만을 바라는 남편과의 결혼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어 14년 만에 이혼하고 맙니다.

 

둘째 남편은 이탈리아 의사였습니다. 그녀는 여행 중 우연히 만난 그 사람과 또 사랑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그러나 두 번째 남자도 역시 바람둥이였습니다. 남편의 바람피우는 현장을 신문에서 보고야 알게 됩니다.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리던 오드리 헵번의 결혼생활은 비극의 연속이었습니다.

 

왜 그녀의 결혼생활은 그렇게 원만치 못했던 것일까요? 바람둥이만 남편으로 맞아들였던 것일까요? 남편들의 책임도 있겠지만 오드리 헵번 역시 결혼할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녀에겐 ‘배고픔’이란 게 있었습니다. 그녀가 6살 되던 해 아버지가 가정부와 바람을 피우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딸에게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은 지옥 같은 일이라며 집을 나가버립니다. 그 이후로 오드리 헵번은 아버지를 만나지 못합니다.

 

오드리 햅번은 나치 시절에 길거리에서 음식을 주워 먹어야만 했습니다. 그때 아버지의 부재는 엄청난 상처였습니다. 그러니 생존을 위해 세상 것에 얽매여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보고 달려드는 독수리 떼가 많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그녀의 부와 명성, 아름다운 여성성을 노렸습니다. 그녀 자신을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세상에 매인 끈을 끊으려고 가진 모든 것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고 수도자의 길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어려울 때 자기가 쓰려고 얼마간을 남겨 숨겨 두었습니다. 그가 스승을 찾았을 때 스승은 그의 행위를 이미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그대는 진정 수도자가 되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먼저 마을로 내려가, 고기를 조금 사서 그대의 벗은 몸에 달아매고 다시 이곳으로 오게나.”

 

그는 스승의 지시대로 자기의 몸에 고기를 달고 산길을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몸에 달린 고기는 흔들거리며 냄새를 풍겼습니다. 냄새를 맡은 들개와 새들이 주위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 고기를 노리고 그에게 덤벼들었습니다. 그는 들개들과 새들에게 대항하며 도망쳤으나 그것들은 끝까지 따라붙었습니다.

들개들과 새들의 계속되는 공격에 그는 많은 상처를 입었고 너무나 지쳐버렸습니다. 이내 그는 그것들이 자신에게 달린 고기 때문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차 없이 그 고기를 던져버렸습니다. 그러자 짐승들은 자신에게서 떨어졌고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가 돌아와 상처투성이가 된 몸을 보이자, 스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을 버리면서도 자기의 돈에 집착하는 자에게는 마귀가 이처럼 공격한다네. 모든 것을 벗어버린 진정한 빈 몸이 되게나.”

 

오드리 햅번은 두 번의 결혼 실패를 두고 더는 세상 것에 집착하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그녀는 어렸을 때 자신에게 초콜릿과 식량원조를 해 주었던 미군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유니세프의 홍보대사를 자처합니다. 가난한 이들을 돕는 이가 된 것입니다. 노아가 배를 만들어 동물들을 태우게 되는 삶으로 전환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 생존이 아닌 다른 이들의 생존을 위해서 사니 더는 그녀에게 파리떼가 몰려들지 않았습니다. 좋은 친구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녀는 죽기 직전까지 좋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았습니다.

 

내 안에 주님을 가지면 다 가진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 것에 집착하지 않고 그러면 주위에 점점 천상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드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내가 안 좋은 이들에게 둘러싸이는 이유는 내가 그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늘로 올라야 합니다. 그 방법은 내 안에 하늘에서 오신 분을 모시는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상처가 금방 치유되는 사람을 보면 두려워합니다. 이 믿음은 누구도 나에게 돌을 함부로 던질 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줄 것입니다.

 

- 전삼용 요셉신부 강론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