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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곰삭한 맛

<침묵 피정1>

<침묵 피정1>

영하 20도

오대산 입구에서 월정사까지는

소리가없다

바람은 아예 성대를 잘랐다

계곡 옆 억새들 꼿꼿이 선 채

단호히 얼어 무겁다

들수록 좁아지는 길도

더 단단히 고체가 되어

입 다물다

천 년 넘은 수도원 같다

나는 오대산 국립공원 팻말 앞에

말과 소리를 벗어놓고 걸었다

한 걸음에 벗고

두 걸음에 다시 벗었을 때

드디어 자신보다 큰 결의 하나

시선 주는 쪽으로 스며 섞인다

무슨 저리도 지독한 맹세를 하는지

산도 물도 계곡도 절간도

꽝꽝 열 손가락 깍지를 끼고 있다

나도 이젠 저런 섬뜩한 고립에

손 얹을 때가 되었다

날 저물고 오대산의 고요가

섬광처럼 번뜩이며 깊어지고

깊을수록 스르르 안이 넓다

경배드리고 싶다

- 신달자 시선집 <저 거리의 암자>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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