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창세3.9-15.20.에페소1.3-6.11-12.루카1.26-38)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아이가 중요한 시험을 망쳤습니다. 좋은 결과가 아니라서 크게 실망했는데, 이 아이의 엄마도 크게 실망해서 식음을 전폐하고 누워버립니다. 이런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특히 수능이 끝나고 나면, 실망한 부모의 모습을 많이 봅니다. 분명히 더 큰 실망은 아이일 텐데, 부모가 더 크게 실망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는 그 부모가 심리적으로 아이에게 구속된 것입니다. 아이의 실패가 곧 자기의 실패이기 때문에, 아이의 마음을 돌보기보다 자기 슬픔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예도 있습니다. “시험 망친 건 너야. 잘 봤어야지.”라면서 외면하는 부모입니다. 이때에는 부모나 아이 각자 고립된 삶을 살게 됩니다.
관계라는 것은 구속된 것도 아닌 또 고립된 것도 아니어야 합니다. 만약 위의 상황에서 이렇게 말했다면 어떠했을까요?
“매우 속상하지? 실망하는 걸 보니 엄마 아빠도 마음이 안 좋아. 그래도 속상하다는 건, 그만큼 열심히 했고 또 기대했다는 뜻이겠지. 마음 잘 추스르고, 어떤 점을 보완하면 좋을지 함께 살펴보자. 엄마 아빠가 도울 것이 있으면 뭐든 말하렴.”
이렇게 말하는 관계가 된다면, 함께하면서도 자율적으로 자기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남 탓하면서 주저앉지 않게 됩니다. 함께하기에 힘낼 수 있으며, 자기 인생을 사는 것이기에 기쁘게 살 수 있습니다.
우리의 관계를 잘 정립했으면 합니다. 함께하면서도 자율적으로 자기 인생을 살게 하는 관계는 가족, 친구, 이웃…. 모든 사람과 이루어야 할 관계입니다.
원죄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축일에 성모님께서 만드신 관계 역시 이 차원에서 묵상할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 잉태 소식을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들었을 때, 거부하고 포기하고 싶지 않았을까요? 또 그 소식에 좌절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시에 결혼하지 않은 여자가 아기를 갖게 되면 간음했다고 해서, 돌을 던져 공개 처형을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모님께서는 우리의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십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하느님과 함께하지만, 자율적으로 본인의 선택을 내세우시며 자기 인생을 살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 삐디킹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
오직 사랑만이 아무 의미 없는 것에 의미를 줄 수 있어요(파울로 코엘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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