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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길동무 얘기

풀보다 먼저 눕던 한덕수 ‘미스터리’ [박찬수 칼럼]

풀보다 먼저 눕던 한덕수 ‘미스터리’ [박찬수 칼럼]

한덕수 국무총리가 27일 오후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 뒤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박찬수 대기자

“풀보다 먼저 눕는 사람.”

한덕수 국무총리와 함께 일한 적 있는 전직 정부 고위 인사가 한 총리를 가리켜 한 말이다. 김수영의 시 ‘풀’에 빗대서, 누구보다 시류에 빠르게 적응하는 걸 표현했다.

김영삼 정부 말기에 통상산업부 차관이던 그는 김대중 정부로 정권이 바뀐 뒤에도 통상교섭본부장과 오이시디(OECD) 대사, 청와대 정책기획수석·경제수석의 출세 가도를 달렸다.

1997년 3월 통산부 차관 인사 프로필에 ‘서울’로 적혀 있던 고향은 이듬해 3월 통상교섭본부장 인사에선 ‘전북’으로 바뀌었다.

그는 김대중 정부 임기가 끝나가자 다시 살길을 모색했다. 경기고 선배인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차기 대통령’이란 전망이 무성하던 시절이었다. 2001년 3월 어느 날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의 일이다. 파업 중인 발전노조 집행부가 명동성당에 들어가 농성을 벌였다.

한덕수 수석은 경제 악영향을 이유로 ‘경찰력을 동원해서 농성 중인 지도부를 끌어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고 한다. 다른 수석비서관이 “명동성당에 경찰을 투입하는 건 박정희·전두환 군사정권도 하지 못한 일이다. 그걸 김 대통령에게 하라는 말이냐”고 반박하자, 한 수석은 “문제가 생기면 내가 옷을 벗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한 수석은 2002년 7월 중국과 마늘 협상 파동의 책임을 지고 경제수석을 그만둔다. 청와대에서 일했던 인사는 “그때 한 수석은 무슨 일만 나면 ‘직을 걸겠다’고 말했다.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형식이었지만, 내부에선 ‘나가고 싶어 하니 내보내자’는 기류가 강했다”고 말했다.

2002년 대선에선 예상과 달리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극적인 승리를 거뒀다. 그 무렵 한 전 수석과 저녁을 같이 했던 정치부 기자의 얘기다. “한 전 수석에게 ‘1년쯤 쉬시면서 천천히 진로를 모색하시라’고 말하니까

대뜸 ‘○형, 이광재씨나 안희정씨를 좀 소개해주시오’라고 나한테 부탁했다. 좀 놀랐다.” 한덕수씨는 노무현 정부에서 경제부총리와 국무총리까지 지냈다.

그가 이명박 정부의 주미 대사로 임명된 과정을 정확히 알긴 어렵다. 그러나 전 정부의 마지막 국무총리였던 인사가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새 정부의 주미 대사로 발탁된 건 전례 없는 일이다.

초기 이명박 청와대에서 일했던 고위 인사는 “한-미 간엔 자유무역협정(FTA)을 잘 마무리하는 문제가 남아 있었다. 내 기억으론 한덕수씨가 우리와 노 전 대통령 양쪽에 이걸 잘 끌어가는 데는 자신이 최적임자라고 설득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렇게 세번의 정권교체에도 살아남은 한덕수는 2022년 윤석열 정부에서 다시 국무총리로 발탁됐다. 지금은 국회 추천 몫의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하다 탄핵당하는 처지에 놓였다. 그를 잘 아는 인사들은 “누구보다 권력 이동에 민감하고 순응했던 한 총리가 대세를 거스르며 용서받기 어려운 악수를 뒀다”고 말한다.

어느 원로 언론인은 열흘 전쯤 그에게 전화를 걸어 헌법재판관 임명을 촉구했다고 한다. 한 총리는 “이런 헌법적인 문제를 권한대행에게 맡기면 어떻게 하냐”며 여야 합의가 먼저라는 태도를 반복했다. 이 언론인은 “그래도 설마 했다.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무엇이 풀보다 먼저 눕던 한덕수를 바꾼 것일까. 그를 아는 인사들은 두가지 가능성을 말한다. 하나는 한 총리 부인과 김건희 여사의 친분이다. 박지원 의원은 “한 총리 부인과 김건희 여사가 굉장히 가깝다. 두 사람이 무속으로 연결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전직 정부 고위 인사는 총리실 쪽에서 들은 얘기라면서 “한 총리 부인이 점집 5곳을 다니면서 점을 보는데 그중엔 김건희 여사와 공유하는 점집이 여럿 있다고 한다. 아마 두 사람이 공유한 점괘가 ‘버티라’는 게 아니었을까”라고 말했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이런 말도 흘려 넘길 수 없는 게 현 정권의 실상이다.

이보다는 한 총리가 예상보다 훨씬 깊숙이 계엄 선포에 개입했을 가능성이 높다. 검찰은 윤 대통령이 올해 3월부터 김용현 전 장관 등과 비상계엄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윤 대통령에게서 계엄 얘기를 들은 사람은 더 많다.

여권의 한 인사는 “설마 했지만 나도 계엄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밝혔다. 한 총리는 훨씬 오래전부터 그랬을 것이다. 개입의 결정적 증거를 윤 대통령이 쥐고 있으니 한 총리로선 끝까지 그와 한배를 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버들가지처럼 휘어져도 부러지진 않았기에 한덕수는 4개 정권에 걸쳐 권력을 누렸다. 국가 혼란을 장기화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으니, 특유의 처세술도 이제 엄정한 심판을 받을 때가 됐다.

pc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