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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길동무 얘기

윤석열은 가도 국민의힘이 남는다. 그게 문제다 [아침햇발]

윤석열은 가도 국민의힘이 남는다. 그게 문제다 [아침햇발]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왼쪽 두번째)이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황준범 논설위원

얼마 전 한 유명 보수 유튜버를 검색해 열어본 이후, 유튜브 알고리즘은 구독자 100만 안팎을 보유한 쟁쟁한 보수 유튜버들의 세계로 줄줄이 나를 안내했다. ‘탄핵소추안 가결 뒤 대통령 지지도가 급상승했다’, ‘헌법재판소 8인 체제가 됐어도 해볼 만하다’, ‘관저뿐 아니라 헌재 앞에서도 열심히 싸워야 한다’ 같은 주장을 쏟아내는 채널들이 화면을 채웠다.

윤석열의 유튜브 알고리즘은 수년간의 단련을 거쳐 특정 취향으로 이보다 훨씬 공고히 구축됐을 것이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한 방송에서 “윤 대통령의 유튜브 알고리즘이 다 망가져 세상을 보는 창 자체가 망가졌을 것”이라고 했다. 그 속에 살면서 윤석열은 공산전체주의와 반국가세력에 흥분하며 일거에 척결할 의지를 다졌을 것이다.

선거관리위원회 서버를 끄집어내 부정선거 실체를 밝혀내서 정국을 한방에 역전시킬 꿈도 키웠을 것이다. 하지만 내란 실패로 궁지에 몰렸으니, 더 깊은 동굴 속으로 걸어갔으리라. 급기야 그는 체포영장 집행을 앞두고 새해 첫날 지지자들에게 “실시간 생중계 유튜브를 통해 여러분께서 애쓰시는 모습을 보고 있다”며 “여러분과 함께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의 선동으로 정국이 더 불안정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그의 싸움이 대한민국 헌법과 민주주의, 국민 자존심을 이겨내진 못할 것이다. 이석연 전 법제처장은 “박근혜 탄핵 사유는 윤석열에 견주면 ‘새 발의 피’였다”며 “6인 체제든 9인 체제든 헌법재판관 전원 일치로 대통령 파면 결정이 나올 걸로 예상한다”고 했다.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은 저물어가고 있는데, 국민의힘은 여전히 그의 손을 놓지 않고 있다. 윤석열이 처단되더라도 국회 의석 100석 이상을 지닌 국민의힘은 2028년 총선 때까지 원내 제2당으로 존속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내란 옹호 정당 모습을 유지한 채 국회의 거대 구성원으로 존재하는 한 12·3 내란은 완전 진압이라고 할 수 없다. 국민의힘을 방관할 수 없는 이유다.

국민의힘은 ‘비상계엄은 잘못’이라면서도 윤석열 탄핵소추는 당론으로 반대하는 치명적 악수를 둠으로써 스스로를 ‘내란의 늪’에 가뒀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의 발언들은 국민의힘의 스텝이 얼마나 꼬여 있는지 보여준다. 그는 지난달 30일 취임사에서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으로 불안과 걱정을 끼쳐드린 점, 깊이 사과드린다”고 했는데, 윤석열의 내란에 대해 사과한다는 건지, 탄핵소추를 못 막아서 죄송하단 건지 분명하지 않다.

그는 윤석열 체포영장 발부 직후에는 “증거인멸 염려가 있다거나 도주 우려도 전혀 없는 상황에서, 더구나 애도기간에 체포영장을 청구해 발부되는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체포를 반대한다는 건지, 애도기간 이후 영장이 발부됐더라면 좋았겠다는 건지 모호하다.

윤석열의 12·3 비상계엄은 요건도 절차도 갖추지 못한, 너무도 명백한 위헌·위법 행위다.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 헌법 기관인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를 침탈하고 정치인들을 체포·구금하려 한 내란이고 친위 쿠데타다. 그런데 국민의힘은 ‘내란 사죄, 탄핵 찬성’이라는 상식을 말하지 못한다. 소수 지지층만 바라보는 선택을 해놓고, 이제 와 다수 국민들도 살피는 모양을 취하려니 권 비대위원장처럼 미끄러운 말이 나오는 것이다.

국민의힘의 진심은 실제 벌어지는 행태에 있다. 국민의힘은 헌법재판관 임명을 반대했고, 의원들은 ‘무죄 추정의 원칙’ 운운하며 윤석열을 옹호했다. 윤상현 의원은 전광훈 목사의 탄핵 반대 집회에 나가 “탄핵소추를 못 막았다”며 큰절 사과를 했다. 내란이 아니라고 발뺌하면서 탄핵심판도 수사도 거부하는 윤석열과 다를 바 없다.

국민의힘은 내란 수괴 배출 정당이다. 검증도 준비도 안 된 이를 급히 데려다 대통령으로 만든 뒤, 그의 야당 경멸, 의회 무시, 권력 폭주를 제어하지 못했다. 이 당 출신 대통령이 연속으로 두명째 파면당할 상황이다.

국민에게 석고대죄, 윤석열과 결별, 새로운 보수로 재탄생을 꾀하는 게 마땅한데, ‘이재명 공직선거법 재판 2심보다 윤석열 탄핵심판이 먼저 나와선 안 된다’는 주문을 외우며 버티기 중이다. 그러느라 내란 수렁으로 더 깊이 빠져들어 탈출을 더 어렵게 한다는 점을 모르고 있다.

너무도 힘겹게 한 해를 건너온 국민들이 간절히 바라는 것은 대단한 성취가 아니라, 상식, 평온, 무탈 같은 것들이다. 평범한 일상의 회복을 돕는 일이 국민의힘은 그토록 힘든가.

jayb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