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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老年의 삶

‘노인의 공로는 끝나지 않았다’… 90세 배우의 수상소감[이미지의 포에버 육아]

‘노인의 공로는 끝나지 않았다’… 90세 배우의 수상소감[이미지의 포에버 육아]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 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인구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배우 이순재 씨가 11일 ‘KBS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뒤 수상 소감을 이야기하고 있다. KBS 화면 캡처

“육십 먹어도 잘하면 상 주는 거예요. 공로상이 아니에요.”

배우 이순재 씨는 지난 11일 KBS 연기대상을 수상하며 무대에 올라 이렇게 말했다. 올해 90세인 그는 연기 인생 70년 만에 첫 연기대상을 받았다.

이 씨는 “미국의 캐서린 햅번 같은할머니는 30대 때 한 번 타고 60(세) 이후에 세 번 탔다”며 “우리 같으면 전부 공로상(을 줬을 텐데)”이라고 했다. 한국의 경우 나이 든 배우들이 대체로 주연에서 밀려나 조연을 맡고 연말 시상식에서도 의례적으로 공로상 대상만 되어온 점을 꼬집은 것이다.

망백(望百)의 배우는 최근 드라마에서 주인공을 맡아 분전했고 현역으로서 당당히 최고 연기상을 거머쥐었다. 그런 이 씨가 후배들의 진심 어린 축하 속에 품격 있는 일침을 날리는 모습은 여러 가지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 48년 뒤 노인 반, 非노인 반… 세계서 가장 늙은 국가

2025년은 대한민국 초고령사회 원년이다. 초고령사회란 인구 20% 이상이 노인인 사회를 뜻한다. 65세 이상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선 것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노인 비율은 더 늘어날 것이다. 2024년 9월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장래인구추계를 반영한 세계와 한국의 인구현황 및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2072년 고령 인구 비율이 47.7%까지 올라 세계에서 세 번째로 늙은 국가가 될 전망이다.

1, 2위를 차지했다는 홍콩과 푸에르토리코는 하나의 나라라기보다 지역에 가까운 점을 감안하면 실질적인 국가 순위로 한국이 1위라 볼 수 있다.

인구의 47.7%면 사실상 절반이다. 48년 뒤면 노인이 반, 노인 아닌 사람이 반인 사회가 된다는 뜻이다.

2000년대 중반, 아주 인상적인 공익광고가 있었는데 저출산이 계속되면 지하철의 노약자석이 사실상 일반석과 자리를 바꾸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그 이미지가 신선하기도 하고 내용이 충격적이기도 해서 기억에 남는데, 그 광고가 현실이 되는 날이 머지않은 셈이다.

이미 지하철을 타면 노약자석이 만석임은 물론이고 앉을 자리를 찾지 못한 어르신들이 일반 좌석까지 넘어가 앉아계신 모습을 어렵잖게 볼 수 있다. ‘초초’고령사회도 먼일이 아니다.

● 아직도 노인빈곤률 부동의 1위

고령화로 인한 문제는 익히 알려져 있다. 상대적으로 생산가능인구가 줄고 부양해야 할 인구는 늘어날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현재 15~64세 생산가능인구 비율은 71.1%지만 2052년 51.4%까지 줄어든다. 생산가능인구 중심으로 짜인 현 산업 구조는 타격이 불가피하다.

생산연령인구 100명당 부양인구(유소년인구+고령인구) 비율인 한국의 총부양비도 올해 42.5명에서 2072년에는 118.5명으로 거의 3배나 껑충 뛰어오를 것으로 예측됐다.

노년층도 힘들어지긴 마찬가지다. 한국은 이미 노인들이 가난한 나라다. 한국이 OECD 안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낯부끄러운 지표가 몇 개 있는데 노인빈곤률도 그중 하나다. 2020년 기준 40.4%로 무려 10년 넘게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우리보다 훨씬 앞서 고령화한 일본의 노인빈곤률도 2020년 기준 20.0%로 한국의 절반이 안 된다.

하지만 글로벌 컨설팅 회사 맥킨지가 2023년 공개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이 노후에 받는 연금의 소득대체율은 지금도 47%에 불과해 OECD 권고치 대비 20%포인트 이상 낮다. OECD 국가 평균(58.0%)과 비교해도 11%포인트 적다.

지금과 같은 저출산고령화 속도라면 돈 낼 사람은 줄고 돈 받을 사람만 급격히 늘면서 기존 금액만큼 받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지금대로 노인 인구가 늘어난다면 어쩌면 한국은 그냥 노인이 많은 나라가 아니라 ‘가난한 노인이 가장 많은 나라’가 될지 모른다.

한 도로에서 폐지 줍는 노인이 폐지를 리어카에 싣고 가던 중 길가에 앉아 쉬고 있다. 뉴시스

● “마땅한 일 없어 가방에 단추 붙이는 알바”

대책은 노인들의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미 일자리를 찾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2분기 65세 이상 노인 취업자 수가 월평균 394만 명으로 1989년 집계 시작 이래 15~29세 청년(380만7000명)을 처음으로 뛰어넘었다.

처음 집계를 시작한 1989년만 해도 청년 취업자가 노인보다 13배 많았다고 한다. 일하는 노인이 급격히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노인들을 위한 일자리는 부족하고 상대적으로 열악하기까지 한 게 사실이다. 예전에 노인 일자리 관련 기사를 기획하며 어르신들을 여러분 만나 취재한 적이 있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꽤 괜찮은 기업에서 오래 근무한 전력이 있음에도 정년퇴직 후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식당, 경비, 용역 등

열악한 일자리를 전전하는 어르신들이 많아 놀랐던 기억이 난다. 소위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 임원까지 역임한 분인데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핸드백에 단추 붙이는 알바를 하고 있다”는 퇴직자도 있었다.

정년을 늘리고 재고용 기회를 확대해 기존 직장이나 동종업계에서 계속 일할 수 있도록 하거나 각자의 특기를 살려 재취업, 창업할 수 있게 지원을 강화해야 하지만,

노사정 간에 겨우 물꼬를 텄던 정년 연장 논의는 물론이고 재고용, 재취업 지원 역시 정치에 막혀 공전 상태다. 연금 개혁은 여러 이해관계자가 다투면서 수십 년째 변죽만 울리고 있다.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무료 도시락을 받으려는 노인들이 줄을 서 있다. 뉴스1

● 서울시민 “노인, 70세는 넘어야” 사람들 생각은 바뀌었는데…

배우 이순재 씨의 연기대상 수상은 그의 말처럼 노인이 ‘기여가 다 끝난 공로자’가 아님을 몸소 보여주었다. 얼마 전 서울시의회는 서울시민 1000여 명에게 ‘노인의 연령 기준’을 물은 설문 결과를 발표했다.

70세 이상, 75세 이상 등 최소 70세는 돼야 한다고 답한 사람이 응답자 10명 중 7명이나 됐다. 사람들의 생각은 진작에 바뀌었는데 제도와 시스템 변화는 언제쯤 그를 따라갈 수 있을까. 하필 초고령사회 원년에 벌어진 정치적 사태에 더욱 답답하고 안타까울 뿐이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