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의 수요일 아침에>
"사람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십시오"
이마에 재를 얹어주는 사제의 목소리도
잿빛으로 가라앉는 재의 수요일 아침
꽃 한 송이 없는 제단 앞에서 눈을 감으면
삶은 하나의 시장기임이 문득 새롭습니다.
죽어가는 이들을 가까이 지켜보면서도
자기의 죽음은 너무 멀리 있다고만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 속에 나도 숨어 있습니다.
아름다움의 발견에 차츰 무디어 가는
내 마음을 위해서도
오늘은 맑게 울어야겠습니다
먼지 낀 마음의 유리창을
오랜 만에 닦아 내며
하늘을 바라보는 겸허한 아침
하늘을 자주 바라봄으로써
땅도 사람도 가까와질 수 있음을
새롭게 배웁니다
사랑 없으면 더욱 짐이 되는 일상의 무게와
나에 대한 사람들의 무관심조차
담담히 받아들이는 일
이 또한 기도의 시작임을 깨닫는
재의 수요일 아침입니다
- 이해인 <사계절의 기도> 중에서
'깊은 묵상 옹달샘-이해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행복한 기다림> (0) | 2025.04.03 |
---|---|
<4월의 시> (0) | 2025.04.02 |
<성 요셉을 기리며> (0) | 2025.02.28 |
<호감을 전하는 말> (0) | 2025.01.10 |
<감사와 행복> (0) | 2025.0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