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활 제3주일-생명주일
(사도5.27ㄴ-32.40ㄴ-41.묵시5.11-14.요한21.1-19)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주셨다.>
“어른”과 “꼰대”는 나이는 비슷할 수 있지만, 태도와 사고방식에서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어른은 존경하고 싶은 사람, 꼰대는 피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어른은 젊은 사람의 말을 경청하고, 이해하려고 합니다. 자기의 경험을 나누되 강요하지 않고, 조언이 필요할 때만 건넵니다. 과거의 방식을 절대 기준처럼 내세우지 않으며, 세상이 변했음을 인정하고 기꺼이 배우려 합니다.
직책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합니다. 반면 꼰대는 자기 말만 옳다고 생각하고, 대화가 아닌 설교를 합니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며, 세대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변화를 거부합니다.
나이나 지위를 내세워 복종을 요구합니다. 제가 아는 어른의 기준은 이렇습니다. “말은 적게 하고, 지갑은 자주 여는 사람.” 저도 60이 넘은 나이에 후배 사제들에게 ‘꼰대’가 아니라 ‘어른’이라는 말을 듣도록 노력하고 싶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세 번 물으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은 세 번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
저는 이 말씀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예수님은 사랑을 ‘감정’이 아니라 ‘책임’으로 보십니다. “사랑한다면, 누군가를 돌보아라.” 그것이 부활하신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세 번이나 물으셨을까요? 그 이유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같은 수의 질문으로 베드로의 실패를 용서하시고, 사랑의 책임을 맡기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갈릴래아 호숫가에는 ‘그리스도의 식탁(Mensa Christi)’이라는 작은 성당이 있습니다.
많은 순례자가 이 성당 안 바위에 손을 대고 기도합니다. 바로 그 바위 위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물으셨습니다. “너 나를 사랑하느냐?” 저도 그 성당에서 기도할 때 예수님의 이 말씀이 마음에 깊이 와닿았습니다. “가브리엘 신부!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
오늘 제가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이 말씀을 실제 삶으로 살아낸 두 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한 분은 대구의 김장하 선생님입니다. 평생 한약방을 하시며 돈을 벌었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거의 쓰지 않고, 수많은 가난한 학생과 이웃을 위해 장학재단과 복지재단을 만들고 수백억 원을 기부하신 분입니다.
본인은 단칸방에서 검소하게 사시면서도,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아낌없이 나누셨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요, 남을 위해 살 때 가장 행복합니다. 자기만 알고 살면 결국 외롭고 불행해져요.”
그 장학금으로 공부한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문형배 헌법재판관입니다. 어려운 형편 속에서 공부하던 문형배 재판관은 김장하 선생님의 도움으로 꿈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훗날 성공한 뒤, 선생님을 찾아가 이렇게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선생님 덕분에 제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자 김장하 선생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준 건 나의 것이 아니야. 내가 사회로부터 받은 것을 너에게 나눈 것뿐이다. 이제는 네가 받은 것을 사회에 되돌려줘야 한다.”
문형배 재판관은 그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법의 정의를 지키는 어른 판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4월 4일,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판결에서도 중심 역할을 하며, 공정하고 흔들림 없는 판결문을 낭독했습니다.
이 두 분은 말로 사랑을 외치기보다는, 삶으로 사랑을 증명한 진짜 어른들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내 양들을 돌보아라.”라는 명령은 지금, 이 순간 우리 모두에게도 주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한다고 말만 하지 않고, 우리 곁의 누군가를 돌볼 때, 진짜 부활 신앙이 시작됩니다.
내 자녀, 내 가족, 내 일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눈을 넓혀 주님께서 맡기신 양들, 약한 이들, 외로운 이들,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돌보는 어른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은 책임지는 것입니다. 진짜 사랑은 돌보는 데서 시작됩니다. 이번 한 주간, 예수님께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는 동시에, 그분의 양들을 돌보는 발걸음도 함께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진짜 모습일 것입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나를 따라라.”
- 조재형 가브리엘신부 강론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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