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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길동무 얘기

민주주의 심장에 꽂힌 대법원의 칼 [유레카]

민주주의 심장에 꽂힌 대법원의 칼 [유레카]

우연이 반복되면 필연으로 의심받고, 이례적 결정이 거듭되면 의도가 있다는 확신에 이르게 된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일 공개한 ‘이재명 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 기록’을 보면, 4월22일 ‘전원합의기일 심리 지정’ 이후 ‘주심 대법관 및 재판부 배당’이 이뤄진 것으로 나온다.

당시 언론은 대법원 2부 배당 사실을 보도한 지 약 2시간 뒤 조희대 대법원장이 전원합의체 회부를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특별한 경우에 한하여 대법원장 직권으로 전원합의체에 회부할 수는 있지만, 순서가 바뀐 것은 명백하다.

더구나 규정상 매달 셋째 목요일 한차례 열리는 전원합의 기일을 하루 간격으로 두차례나 잡았다. 그리고 9일 만에 파기환송 판결을 내렸다. 상고심 사상 초유의 속도로 재판을 진행하면서 대법원장이 이례적인 개입을 거듭했다.

무엇보다 법률심인 3심에서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을 여러차례 드러냈고, 재판부에 배당하기도 전에 사건 기록 검토를 시작했음을 보도자료에서 스스로 밝히는 등 사법 시스템의 안정성을 저해하는 일탈을 저질렀다.

서울고법은 대법원의 파기환송 하루 만에 재판부에 배당하고 같은 날 공판기일을 지정하며 피고인 출석 소환장까지 발송했다. 게다가 법원 집행관이 직접 전달하는 집행관 송달 촉탁을 선택했다.

집행관 송달은 우편 전달이 되지 않을 경우 마지막 수단으로 선택하는 방법이다. 사법부 전체가 이재명 후보 피선거권을 박탈하려고 작정한 것처럼 보인다.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 윤석열의 구속 취소를 결정한 지귀연 부장판사가 3년째 같은 재판부를 맡고 있는 것도 이례적이다. 원래 재판장 교체 주기는 2년이었는데 조희대 대법원장 취임 이후 3년으로 늘렸다.

하지만 배석판사 두명은 지난 2월 정기인사에서 1년 만에 바뀌었다. 새 배석판사들이 발령받은 지 약 2주일 뒤인 3월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는 윤석열 구속 취소를 결정했다.

지귀연 판사는 나머지 내란 공범들과 윤석열 직권남용 재판까지 도맡고 있다. 이 모든 게 우연일까?

대법원장도 고유의 정치 지향과 판단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재판은 사견을 배제하고 공정하게 해야 한다. 최소한 공정성을 의심받을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조 대법원장은 국민 시선 따위는 아랑곳없다는 듯 노골적으로 선거에 개입했다. 민주주의의 심장인 선거가 대법원의 칼을 맞고 피를 흘리고 있다.

이재성 논설위원 s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