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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곱씹어 깨치기

<쌀 한 톨>​

입 속에서 나온 동백꽃 세 송이 (어른을 위한 동화)

                             <쌀 한 톨>

우는 소리가 어디선가에서 들려 왔습니다.

“누굴까? 누가 저렇게 굴뚝새처럼 울지?”

만희는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이불장 문을 열어 보았습니다.

만희의 오줌 자국이 남아 있는 요가

만희를 보자 비죽배죽 웃었습니다.

“아유, 창피해.”

만희는 얼른 이불장 문을 닫았습니다.

마루로 나와서 신발장 문을 열었습니다.

나란히 나란히 짝을 맞춘 신발 가운데

오빠의 비신 한짝이 쓰러져서 끄응끙

앓고 있었습니다.

“미안해.”

만희는 쓰러져 있는

비신을 일으켜 세워주었습니다.

신발장 문을 닫고 부엌으로 갔습니다.

양념장 문을 열었습니다.

간장과 참기름은 유리병 속에서

그리고 고춧가루와 깨소금은

하얀 사기 그릇 속에서

콜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만희는 양념들이 잠에서 깰까 봐

소리 나지 않게 조심해서 문을 닫았습니다.

만희의 귀가 쫑긋 섰습니다.

울음이 흘러 나오는 곳을 마침내 찾았습니다.

빈 그릇들이 들어가 있는

설거지통 속이었습니다.

만희는 모둠발을 하고

설거지통 속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설거지통 속의 다른

그릇은 다 깨끗하였습니다.

그러나 만희의 밥그릇만은

지저분하였습니다.

밥알도 많이 남아 있었고

먹다 만 김치쪽도 남겨진 채였습니다.

울음소리를 내고 있는 것은

바로 그 김치쪽과 밥알들이었습니다.

“울음 뚝 그치지 못하겠니!”

만희는 소리를 바락 질렀습니다.

우는 소리가 여치 소리만큼 낮아졌습니다.

“왜 우니. 왜 그렇게

동네방네 떠나가라고 울어?”

그러자 밥알이 사정을 이야기하였습니다.

“내 말 좀 들어봐.

내가 이렇들 한 알의 밥이 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공이 들여졌는지 몰라.

볍씨로 갈무리되었다가 모판에 뿌려지고,

다음에는 모로 자라나서 논에 옮겨지고.

그리고 나서부터는 숱한 김매기와 거름 주기,

가뭄 때는 물을 끌어 대랴,

병충해에 농약 치랴,

정말 농부의 땀방울로 푹 적셔져서

우리가 쌀이 된거야.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소원은 더욱 간절하지.

우리가 사람의 밥이 되었을 때

우리로 하여 그 사람이 힘을 얻어서

그 힘을 농부의 땀방울처럼

거짓 없이 보람 있는 일에 쓰기를 바란거야.

그런데 오늘 내가 드디어 밥이 되어

만희네 밥그릇에 담아졌는데

넌 군것질을 해서 밥맛이 없다고

엄마한테 짜증을 내다가

엄마가 한눈 판 사이에

나를 슬쩍 흘려버렸었지.

이렇게 해서 내가 지금

설거지통으로 옮겨 온 것이야.

그러니 내가 억울해서 어찌 울지 않고

배길 수 있겠니?”

김치쪽도 말했습니다.

“나도 마찬가지야.

나도 저 밥이 된 쌀만큼

많은 농부의 정성을 받고 자라나서

마침내 이 손 저 손을 거쳐

김치가 된 것이야.

사실 오늘 낮에 만희 네가 나를 집어들

때까지만 해도 나도 행복했어.

아, 나도 누군가를 위하는

반찬이 되는 구나 하고 말이야. 그

런데 이렇게 조금만 베어먹고

버리다니 정말 너무해...”

만희는 눈에 눈물이 가득 괴었습니다.

“내가 몰랐어. 다음부턴 밥알 하나

김치 한 쪽 버리지 않고 잘 먹을게.

용서해 줘.”

만희 엄마는 설거지를 하다 말고

만희의 잠꼬대를 들었습니다.

앞치마에 물묻은 손을 닦으면서

방에 들어와 보니 만희는 미닫이에

코를 박고 잠이 들어 있었습니다.

뜰에 목련이 눈부시게

벙그는 봄날 오후였습니다.

- 정채봉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