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자)12월 23일
(말라3.1-4.23-24.루카1.57-66)
<우리 모두 존재 자체로 하느님 은총의 표지요 도구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한 아기가 태어나면 어떤 이름을 지어줄까, 부모나 조부모들이 고민을 참 많이 했습니다. 과거에는 작명에 있어서 오랜 전통인 돌림의 룰에 따라 중간이나 마지막 한자만 선택하니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가정에서는 아이의 인생이 더 잘 풀리고, 큰 인물이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안고 작명소를 찾았습니다.
어린 시절 저도 어르신들을 따라 작명소를 가본 적이 있었습니다. 꼬질꼬질한 하얀 한복을 입고 수염을 길게 기른 어르신께서 큰 방석 위에 앉아 계셨습니다. 한자로 가득한 두꺼운 책을 뒤적이고, 고민을 거듭하더니, 멋진 붓글씨로 이름을 적어주셨는데, 사례비가 만만치 않아, 저도 나중에 크면 작명소나 차릴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노인 중의 노인 즈카르야와 엘리사벳 사이에 아기가 생겼다는 소문은 당시 아인카림에서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다들 두 사람을 두고 수군거렸습니다. “세상에, 정말이지 기가 찰 일일세. 그 연세에 어떻게 그게 가능한 일인가? 비결이 대체 뭐지?”
특히 엘리사벳은 이웃 사람들의 눈총과 수군거림이 너무나 싫고 부끄러워 다섯 달 동안이나 숨어지냈습니다. 그러나 큰 부끄러움과 동시에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베푸신 놀라운 은총과 자비에 감사하며 이렇게 속으로 되내었습니다.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겪어야 했던 치욕을 없애 주시려고 주님께서 굽어보시어 나에게 이 일을 해 주셨구나.”(루카 1,25)
이윽고 해산달이 되어 엘리사벳은 주변 사람들의 우려와는 달리 아주 건강한 아기를 순산했습니다. 호기심 가득했던 이웃과 친척들이 몰려와서 태어난 아기를 구경하며 축하도 하고 신기해하기도 했습니다.
여드레가 지난 후 이웃들과 친척들은 아기의 할례식에도 참석했습니다. 그들은 아직도 말을 못하고 있는 아버지 대신해서 태어난 아기의 이름을 즈카르야라고 정하고 명부에 적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때 엘리사벳이 크게 외쳤습니다.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요한이라는 이름은 ‘하느님의 은총’ 혹은 ‘은총의 지닌 사람’이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이름은 요한이 후에 선포할 복음의 은총, 그리고 이 세상에 결정적인 은총을 가져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아직도 의구심으로 가득했던 이웃과 친척들이 재차 즈카르야에게 아기에게 어떤 이름을 주고 싶다고 물었습니다. 그는 서판에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습니다.
즈카르야가 서판에 요한이라는 단어를 쓰자마자, 즉시 요한이라는 이름으로 인한 주님의 은총이 즈카르야에게 내렸습니다.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했는데, 첫 마디가 하느님을 찬미하는 기도였습니다.
이렇게 요한은 태어나면서부터 주님의 은총을 주변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역할을 시작했습니다. 오랜 광야 생활을 거쳐 위대한 예언자로 거듭난 요한은 세례 갱신 운동을 통해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에게 하느님의 은총을 전하는 역할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 역시 존재 자체로 하느님 은총의 표지요 도구입니다. 수많은 하느님의 은총 속에 살아온 우리들입니다. 그분으로부터 받은 은총을 내 안에 담고만 있지 말고, 은총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게 기꺼이 나눠주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늙은 엘리사벳은 마지막 예언자를 낳았고, 젊은 처녀 마리아는 천사들의 주님을 낳았습니다. 아론의 자손은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를 낳았고, 다윗의 자손은 땅의 힘센 하느님을 낳았습니다. 아이 못 낳는 여자는 죄를 탕감하는 사람을 낳았지만, 동정녀는 죄를 없애시는 분을 낳았습니다.”(시리아인 에프렘, 타티아누스의 네 복음서 발췌 합본 주해)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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