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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福音 묵상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1요한1.1-4. 요한20.2-8)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사제 모임이 있을 때, 책 한 권을 들고 갔습니다. 제 옆에 앉은 신부님은 제가 들고 간 책을 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책 이해가 돼? 나는 도대체 무슨 말 하는 줄 모르겠더라.”

이 신부님은 저보다 훨씬 똑똑하고 책도 많이 읽었지만, 이 책을 읽기가 힘들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어렵기는 했지만 다 읽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더 똑똑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어쩌면 제가 더 이 책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모두 이해한다면 굳이 읽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공부를 왜 할까요? 모든 것을 알고 또 이해되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르고 있고 또 이해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기에 계속해서 공부하는 것입니다. 책도 그렇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앎을 갖게 되었다면서 호기심을 가지고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종종 주님을 도대체 모르겠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모르기 때문에 주님 믿는 것을 포기해야 할까요? 모르기 때문에 알기 위해 끝까지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노력을 통해 조금씩의 ‘앎’이 자기에게 다가옵니다. 그 앎으로 기쁨과 함께 주님과의 간격이 점점 좁혀지는 것입니다.

오늘은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입니다. 요한 사도는 예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신 제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중요한 사건에 늘 요한 사도가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죽음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에 간 마리아 막달레나는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는 것에 놀라서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인 요한에게 알립니다. 그리고 무덤으로 달려갑니다.

빈 무덤을 보고 누가 예수님의 시신을 몰래 다른 곳에 옮겼다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습니다. 이 믿음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직접 평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새겨듣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면서 예수님께 대한 앎을 키워왔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을 우리 나약하고 부족한 인간이 온전히 알기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알기 위해 노력하면서 조금씩 알게 됩니다. 이 앎을 통해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에 가까워지게 됩니다. 주님과 더 가까운 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

 

오늘의 명언: 노력한다고 해서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모두 다 노력을 하였습니다(스티븐 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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