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주일
(이사 49,3.5-6.1코린 1,1-3. 요한1,29-34)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어느 책을 읽다가 저자가 수도원에서 피정하면서 성직자와 수도자가 매일 바치는 시간경이라고 하는 성무일도를 함께 한 체험을 적었습니다. 자신이 이제까지 바쳤던 기도보다 훨씬 길고, 또 시편이 주를 이루기에 이해하기 힘들었음을 말합니다. 그러면서 신심이 깊지 않고 전례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 사람들은 시도하기 어려운 과업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 기도 한 번 참석했다가 끝나자마자 지쳐 쓰러졌다고 자기 책에 적었습니다.
아마 이 작가의 글을 읽는 사람은 성무일도를 끔찍할 정도로 어려운 기도로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신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성무일도를 바쳐온 저로서는 그렇게 어렵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어쩌다 한 번 경험하는 것과 30년 넘게 해오는 것의 차이는 이렇게 큽니다.
성인이라면 그 누구도 매일 아침 씻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렸을 때는 머리 감기도 너무 어렵고 무서웠던 일로 생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서로 좋아하는 연인도 처음에는 만남에 어려움이 있지 않았을까요? 아직 만남이 익숙하지 않아서 어색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과의 관계도 이렇다고 봅니다. 신앙생활이 어색하고 어렵다고 느끼는 것은 그만큼 주님을 알지 못하고 또 주님을 많이 만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익숙해질수록 어려움 속에서도 기쁨과 행복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이 주님과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더욱더 주님을 알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을 향해,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라고 말합니다. 거친 광야에서 사람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던 세례자 요한이었습니다. 이 세례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우리 모두의 구원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구원자를 알게 되었을 때의 기쁨이 얼마나 컸을까요? 본인 스스로 “나도 저분을 알지 못했다.”(요한 1,31)라고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알게 된 것은 예수님을 알기 위해 그만큼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하느님의 소리를 듣게 되었고, 사람들 앞에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증언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었던 세례자 요한이었지요. 예수님의 인기보다도 압도적인 인기였습니다. 요한의 말 한마디면 군중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수 있는 엄청난 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을 알기에 자신을 높일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도 없는 겸손을 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사야 예언자의 “나의 구원이 땅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이사 49,6)라는 메시지가 하느님의 뜻이었습니다. 이 하느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바오로 사도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와 함께 할 것입니다(1코린 1,3 참조).
-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
해결될 일은 생각할 필요가 없고, 해결되지 않는 일은 고민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달라이 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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