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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堂-감사 찬미 제사

설, 하느님의 말씀 주일 - 두 번째로 사는 2023년

 

설, 하느님의 말씀 주일 - 두 번째로 사는 2023년

 

바둑의 고수가 되려면 복기(復棋)를 해야 합니다. 지난 대국의 한 수 한 수를 되짚어보는 것입니다. 졌다면, 어떤 수가 패착이었는지 찾습니다. 다음 판에 그런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삶에서도 복기가 필요합니다. 지난날 실수를 다시 범하지 않기 위해섭니다.

1. 지난해를 복기(復棋)하자

‘같은 삶을 두 번째로 산다고 여겨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지난해가 사실은 2023년인데, 아쉬웠던 점과 실수 등을 보완하여 다시 살 기회를 주셨다 여기고 새해를 산다는 겁니다. 남다른 각오와 다짐이 새롭지 않겠습니까? 하여튼 삶에서도 고수가 되려면 복기가 필요한가 봅니다.

어바웃 타임(About time)이란 영화를 보고 놀랐습니다. 할리우드 영화지만 영적인 메시지가 있습니다.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팀이란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실패로 여겨지는 과거 시점으로 돌아가 다시 삶을 시작할 수 있는 신통력입니다. 인생이 그럴 수 있다면 어려울 게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팀은 점차 시간 여행 횟수를 줄여나가면서 나중엔 시간 여행을 하지 않게 됩니다. 과거로 돌아갈 필요가 없게 된 겁니다. 삶의 고수가 된 것입니다.

팀은 여러 번 과거로 삶을 되돌려 살아보지만, 이것을 고치면 다른 곳에서 어긋납니다. 삶이 제자리에서 맴돕니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사실 우리 삶이란 어제와 오늘, 대부분 비슷비슷하게 전개됩니다. 팀이 깨달은 것은 주어진 삶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완벽한 삶은 있을 수 없고,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해야 할 일이라면 즐깁니다. 할 수 있는 것도 즐깁니다. 어쩔 수 없는 것도 즐깁니다. 그건 지금 여기서 깨어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팀은 카페 종업원의 명랑한 인사에 제대로 응대하지 못하는 자신의 태도도 잡아냅니다. 지금 여기서 어떻게 해야 후회하지 않을지를 알아차리게 됩니다.

우리에게 시간을 되돌리는 신통력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효과를 내는 영적 도구가 있습니다. 영신수련의 양심 성찰입니다. 지난 삶을 복기해, 오늘 여기 깨어있게 합니다. 이것이 진짜 삶입니다.

2. 양심(의식) 성찰이 삶의 복기(復棋)

지난 삶을 돌아본다고 해서 꼭 잘못된 것만 끄집어낼 필요는 없습니다. 하느님 현존 앞에 내 삶을 놓아두는 것이 기본 전제가 됩니다. 잘한 것에는 감사와 칭찬을,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에 대해서는 화해가 필요합니다. 하느님과의 화해, 다른 이들과의 화해, 나 자신과의 화해, 화해하지 못한 것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자유롭게 될 수 있다고 영신수련은 말합니다. 이런 과정에 이르기까지의 식별도 필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최종적으로 더 나은 자기 모습을 상상하며 그 삶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양심(의식) 성찰의 본래 취지는 윤리 도덕적인 반성이라기보다는 주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아가려 깨어있고자 하는 것입니다.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 깨어 있는 종들! …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에서 시중을 들 것이다.”(루카 12,37)

우리는 그저 종이 아닙니다. 종이 자기 할 일을 다 했다 해서 그 종을 식탁에 앉히고 주인이 옆에서 서빙을 하지는 않습니다. 주인만큼 성실히 일하는 종은 없습니다. 충직하게 일한다면 주인만큼 됩니다. 자녀가 되고 상속자가 됩니다.

지혜서의 ‘지혜’를 ‘복’으로 바꾸어 봅니다. ‘깨어있는 이는 수고할 필요도 없이 자기 집 문간에 앉아있는 복을 발견합니다. 복을 받으려고 깨어있는 이는 곧바로 근심이 없어지고 복은 자기에게 맞갖은 이들을 스스로 찾아다니고 그들이 다니는 길에서 상냥하게 모습을 드러냅니다.’(지혜서 6장 참조) 깨어서 굴러 들어오는 복을 한가득 담아내는 새해가 되길 빕니다.

서춘배 신부(의정부교구 병원사목위원회)